[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초혼에 실패라는 아픔이 서로 있어 다시는 상대에게 상처 주지도 받지도 말자며 시작하여, 결혼을 전제로 양가 인사도 다하고 집안도 오가고 대소사도 챙기면서 1년 넘게 거의 식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서로 아이들이 있다 보니 그 부분은 쉽게 두 사람만 좋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 아직은 온전한 합가를 하지 않고 주말부부처럼 오가며 지내는 중입니다.

문제는 처음 만난 시기에 제가 첫 남편 외도로 상처가 너무 커 십 년 넘게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다가, 이제 만났으니 다른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서로 참고 안아주고 대신 같은 상처만 주지 말고 마음만 온전히 내게 달라했었습니다. 본인도 마찬가지라 했었고요.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나다 보니 이 사람 깊은 관계는 아니라도 여기저기에서 여자를 찾고 있더군요. 밤늦은 시간 전화통화, 영상통화 등 여러 번 제가 확인했고, 그 사람은 결국 미안하다, 아무 사이 아니다, 그냥 안부 전한 거다, 다신 안 하겠다, 하고 넘어갔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제게 있지 않다는 게 느껴지고 허전합니다. 많이 서운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부분 말고는 애정표현도 잘하고, 양가 식구들도 잘 챙겨주고 잘 하는 것 같은데도, 무심함이 보입니다. 그냥 안사람으로만 곁에 두는 듯한 느낌이 있고 여자로는 대하지 않는듯합니다.

그냥 제 느낌인지 처녀총각으로 만나 아이 낳고 산 오래된 부부도 부부가 서로 데면데면하면 멀어지는 법인데... 이렇게 만나 가족으로만 여기고 서로 잠자리도 잘 하지 않는 부부가 진정 오래갈 수 있을까, 그냥 식구들 챙기며 사는 게 진정 부부가 될 수 있는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여러 번 대화하고 서로 더 잘하자 했다가도 며칠 안 가 똑같고 여전히 남녀 사이 아닌 그냥 가족, 지인처럼 자고 생활합니다. 이게 맞는 것인지. 계속 이렇게 지내야 하는 것인지, 제 가족이나 동생이 같은 상황이라면 저는 당장 헤어지라고 할 것 입니다만, 상의할 곳도 없고... 이미 양가 인사도 끝났고, 두 번째 결혼이니 좀 더 참아보자, 이런 식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두 번 상처 주고받는 거 싫다, 저랑 평생 함께할 거라고 늘 얘기는 합니다만 저에게 보여주는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네요.

마치 여자는 많다, 더 예쁘고 능력 있는 여자를 찾을 수 있다는 듯, 만약 제가 헤어지자고 하면 언제든지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을 보여서 저도 심사숙고하며 제 스스로 더 상처받지 않으려고 마지막 말은 꾹 참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구 보다 화를 내고 챙겨주고, 애정표현 스킨십도 잘하는데 딱 거기까지만이고 더 이상 잠자리까지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과연 이 사람을 계속 만날 수 있을까요? 집안이 엉켰다고 더 가야 하는지 지금이라도 그만두어야 할지 힘이 듭니다.
 

사진_픽셀


답변) 

초혼, 재혼 상관없이 부부 관계가 유지되는 데 가장 핵심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신뢰입니다. 이 신뢰는 좀 세부적으로 나눌 수도 있죠. 상대방의 경제적 능력에 대한 신뢰, 건강 상태에 대한 신뢰, 재혼의 경우는 내 자녀도 자기 자식처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신뢰, 이런 것들이요. 지금 재혼을 생각하시는 분은 다양한 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분인 것 같아요. 질문자 분을 배려하고, 양가 가족도 잘 챙기며, 자녀 문제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듯합니다.

그런데 질문자 분이 상대방에 대해 의혹을 가지는 부분이 있으시네요. 여자관계, 즉 외도와 성관계에 대한 부분이죠. 이 두 가지는 사실 어느 정도 함께 묶이는 문제이기도 해요. 성관계가 이전 같지 않을 때, 많은 분들이 혼자 고민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니까요. 이렇게 혼자서 고민하다 보면, 종종 상대방의 외도에 대해서 걱정하게 돼요. 왜냐하면 '내 성생활이 왜 이전만큼 만족스럽지 않을까?'를 고민하다 보면, 결국 '내 성적인 매력이 떨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자연스럽게 흐르게 되거든요. 그리고 '내 성적인 매력이 떨어져서, 상대방이 나를 떠날지도 몰라.'라는 생각도 함께 들곤 하죠. 조금 더 나아가, '상대방이 다른 여자가 생겨서, 성관계가 이전 같지 않나.'라는 생각까지 들 수도 있죠. 아마 질문자 분이 이미 외도로 상처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외도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어도, 이런 생각들이 동시에 빠르게 올라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작성하신 글을 읽다 보면, 첫 남편과 이혼하신 뒤 남자를 피하시고, 남자를 만나더라도 성관계를 피하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지금 만나고 계신 분과도, 만남 초반에 성관계를 피하는 것으로 서로 어느 정도 합의를 하고 관계를 지속하고 계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만남 초반에 성관계를 하는 것은 나이와 상황에 상관없이 조심할 필요가 있죠. 만남 초반에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에게 마음이 없는 성관계 즉 성적 착취를 당할 가능성을 줄여주니까요. 나에게 성적 착취를 할 목적으로 다가온 상대방은, 초반에 성관계를 하지 못하면 떠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다른 대상을 찾아 목적을 이루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효율적이죠. 하지만 관계가 깊어지면서 상대방과의 성관계에 대한 질문자 분의 마음이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관계가 깊어진 만큼, 성관계에 대한 마음도 커지셨겠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단지 그런 마음의 변화를 상대방이 모르고 있을 뿐이죠.

그래서 일단은 그런 심정의 변화를 상대방에게 알리셔야 합니다. 성관계에 대한 얘기를 진지하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죠. 또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 걱정도 되실 거고요. 하지만,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이 신뢰를 흔드는 상황이기 때문에 반드시 상대방도 알아야 합니다. 관계에 위기가 왔는데, 한쪽만 위기 상황을 알고 있다면 문제는 점점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관계는 나 혼자의 힘으로만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명이 각자 노력해서 유지하는 것이니까요. 제 추측대로 만약 상대방이 만남 초기에 성관계를 피하는 것으로 합의를 하고 관계를 지속했다면, 상대방도 그 나름의 사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남자가 성관계를 열정적으로 원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정리를 하면, 질문자 분은 관계가 깊어질수록 성관계의 중요성도 커지지만, 상대방은 관계가 깊어지는 것과 상관없이 성관계를 원하지 않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관계가 깊지 않을 때는, 성관계에 대한 태도가 같아서 갈등이 없었지만, 관계가 점점 깊어지면서, 성관계에 대한 태도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거죠. 만약 상대방이 성적 착취를 하는 분이었다면, 애초에 질문자 분 곁에 남지 않았을 겁니다. 다른 여자와 연락하는 시도나, 헤어지자고 말하면 언제든지 끝낼 수 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본인도 이 관계가 깊어지면서 성관계에 대한 갈등이 생기는 상황을 예측하고 있고, 그 갈등 상황이 조율되지 않는다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상대방이 바람둥이라는 가정보다는 더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상대방도 갈등 상황에 대해 인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두 분이 성관계에 대해서 얘기를 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완전히 태도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합의점을 찾을 가능성은 있으니까요. 만약 이 부분이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그 이후에 관계를 그만둘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고민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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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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