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정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녕하세요? 시원한 가을이 되었습니다. 눈부시게 푸른 가을 하늘 잘 즐기고 계신가요?
 

사진_픽셀


저도 개인적으로 가을을 무척 좋아합니다. 예전에는 봄이 더 좋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더 가을의 매력이 눈에 들어오네요. 

하지만 진료실에서는 우울하다고 오시는 분들이 늘어나셔서 가을이 좋은 계절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울증이 심해지는 시기인 만큼 자살에 대한 경계심도 더 필요해서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데요, 연구에 의하면, 자살을 하려는 사람의 2/3는 자살을 암시하는 징후를 보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 입장에서는 일상적으로 흘려보내다 보니 자살 이후에 돌이켜보고 깨닫고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리 알고 대처한다면 자살은 예방 가능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자살징후에 대한 이해를 돕고 대처를 교육하기 위해 한 사보에 기고하였던 칼럼을 올려드립니다. 자살자 1명이 발생하면 유가족의 자살위험은 6~8배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자살징후가 보이면 전문가를 만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읽으시기 쉽게 스토리로 구성을 했으니 잘 기억하셨다가 혹시나 힘든 상황에 있을 수도 있는 소중한 친구, 동료, 가족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시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가을 시즌 보내세요.

 

자살 위험 징후 알아차리기 / 대처방법

<김부장 story>

(이 이야기는 자살위험인자와 징후를 기초로 구성된 가상의 스토리입니다)

김부장은 아직도 부하직원 P의 부재가 믿기지 않는다. 팀 내 분위기 메이커였던 P는 얼마 전 회식에서도 동료들과 즐겁게 웃으며 잔을 부딪치고, 2차를 외치며 회식 분위기를 주도하였다. 늘 사무실에서도 웃으면서 인사하고, 누구보다도 밝게 지내던 P사원이었는데, 3일 전 그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살로 인한 사망이라는 것이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부고를 들은 날은 팀 내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고, 간혹 우는 직원들도 있었다. 세상을 좀 오래 살았고 나름 잔뼈가 굵었다고 생각해온 김부장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오후쯤 회사 배려로 애도상담 전문팀이 방문하여 전체 브리핑과 개별상담을 진행하였고, 관리자인 김부장에게 팀 전체 분위기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지 조언과 함께 김부장 스스로 마음을 챙길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왜 진작 몰랐을까…’

장례식장을 방문해 들어보니 P는 숨겨둔 빚이 있다고 했다. 작은 돈이라도 굴려보겠다며 주식을 하다 몇천만원 손해를 봤다고 한다. 또 6개월 전에 아버님이 최근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뒤 장남인 P가 뒷수습을 하느라 마이너스통장으로 병원비를 대 왔던 모양이다. 설상가상으로 P의 아버지일로 집안 반대가 심해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와도 1달 전에 헤어졌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P는 최근에 연차를 쓰는 빈도가 잦아졌었다. 아버님 간병도 있었지만, 몸이 힘들다며 쉬는 날도 종종 있었다. 술을 그렇게 좋아해도 다음날에는 끄떡없이 나오곤 하던 P였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늘 감기 기운이 있고, 머리가 아프고 소화가 안된다며 사내의원을 자주 들락거렸다. 웃는 표정 뒤로 언뜻언뜻 우울한 표정이 비치기도 해서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데… 그때 붙잡고 이야기를 해볼 걸 후회도 되었다. 친구들에게는 최근에 술 마시자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매일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 폭음을 하고, 예전 같지 않게 우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죽던 날도 친한 친구와 술을 마시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갔다. 그날은 말수가 별로 없고, 긴장된 모습이었다고 했다.

 

♦ 김부장의 경험은 우리와는 먼 얘기일까?

국내 역학연구에 따르면 우리 국민 7명 중 1명은 자살을 심각하게 고려해본 적이 있으며, 100명 중 3명은 자살을 시도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저도 제가 이런 생각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라는 어느 환자분의 말처럼 어느 누구도 자살의 위협에서 안전하지 않다. 매일 한 공간에서 생활하던 직장동료를 자살로 잃는 일도 드문 일이 아니다. 자살 사망자가 발생하면 주변 인들은 한동안 굉장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OECD 자살률 1위 국가에 살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일까? 그러나 WHO의 선언과 같이 자살은 분명 예방될 수 있는 질환이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올해 1월에 발표한 <2015년 자살 사망자 심리부검 분석 결과>에 따르면 자살자의 88.4%는 당시 우울증, 알코올 사용장애 등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었으나 꾸준히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은 15%에 불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심리부검 대상자의 93.4%가 사망 전 언어, 행동, 정서적 변화 등 어떤 형태로든 자살의 경고신호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인식한 가족은 19%에 불과하였다. 즉, 자살자의 경고신호를 잘 알아차리고, 심리적 상태에 대한 치료를 제대로 받도록 하는 것이 자살예방에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경고신호가 감지되었다면 자살의도에 대해 직접 물어보는 과정을 통해 심각도를 파악한 후 전문적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살에 대해 물어보면 오히려 자살생각이 생길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자살의도에 대한 질문은 오히려 자살 위험을 낮추므로 묻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지만, 심각한 것 같다. 전문가를 만나보는 것이 좋겠다”라고 치료를 권유하고, 사내의 상담센터를 통하거나,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방문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자살시도자가 1~2년 정도 자살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는 기간을 거쳐 자살을 실행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이 기간 중에 전문가를 만나 평가받도록 해야 한다.
 

사진_픽셀


♦ 자살 경고 신호는 어떤 것이 있을까? (자살 위험 체크리스트)

죽음에 대한 언급을 한다.(장난스럽게 하든, 진지하게 하든 상관없이)
자살에 대한 검색, SNS에 자살 관련 언급.
눈에 띄게 우울해 보이고, 불안해하고 지쳐 보인다. 
최근 음주가 많이 늘었다.
평소 애착을 가지고 있던 소중한 물건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신변을 정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갑작스러운 안부 인사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잘 지내세요.”
(회사에서) 자주 연차를 쓰고, 아프다며 무단결근을 함. 

 

♦ 자살 위험을 높일 수 있는 상황적 인자들

갑작스러운 상실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 이별, 해고, 건강악화 등)
금전적 파산(사업실패, 빚)
정신적 외상사건 (따돌림, 괴롭힘, 희롱, 자연재해 등)
과거(특히 1년 내) 자살 시도력 

 

당장 병원을 찾기가 어렵고 급한 상황이라면, 아래의 번호들을 이용해 볼 수도 있다. 

24시간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 1577-0199
생명의 전화 1588-9191
보건복지콜센터 129

 

세상에 자신을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자살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처럼 직장 내 자살은 일단 발생하게 되면 생각보다 오래 후유증으로 남게 되므로 미리미리 감지하여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창의성이 중요시되는 21세기에 조직의 사기는 매우 중요한 관리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명한 관리자라면 사람 냄새나는, 공감과 이해가 있는 조직문화가 자리 잡도록 노력하여 자살 예방과 성공(창의적 조직을 통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시길 권고드린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