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섬망(delirium)이 뭔가요?

나이 많은 가족을 병간호 할 때면, 오밤중에 뜬금없는 옛날 이야기나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병을 앓기 전에는 멀쩡하던 가족이기에, 이를 목격한 가족들은 갑자기 발생한 치매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고령이며 치매의 위험 소인을 가진다면 치매가 새롭게 발생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는 없다. 필요한 경우 MRI 등의 뇌영상 촬영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이전 인지기능의 문제가 없고, 치매의 가능성이 없는 이들에게 갑작스레 인지기능과 의식 변화가 나타난다면 섬망의 가능성을 의심해 볼 필요는 있다. 섬망의 발생 빈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일반 입원의 경우 20% 가량, 수술의 경우 10-40% 가량의 발생률을 보이며, 중환자실에 입원할 정도의 중한 질환이나 말기암의 경우 80%에 달하는 높은 빈도로 섬망 증상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 섬망의 증상

섬망에서는 의식장애가 나타나 주변 환경을 파악하는 능력이 일시적으로 감퇴된다. 주로 주의력의 문제(주의를 전환하고, 집중하고, 유지하는 능력의 저하)가 나타나게 된다. 섬망 증상은 주로 주변 환경이 어두워지는 밤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증상이 나타날 경우 낮과 밤, 장소, 계절 등의 정보에 혼란이 오기도 한다. 갑자기 수 십년 전의 일을 생생하게 이야기하거나, 밤인데도 '집으로 가야 한다. 밖으로 나가야 한다'며 떼를 쓰는 등의 행동은 이러한 지남력(orientation)의 저하 때문이다. 

섬망이 나타났을 경우 겉으로 보이는 증상은 크게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겉으로 보이는 증상이 비슷해, 급성 뇌 기능 부전, 혹은 급성 치매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전형적인 치매에서는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인지기능 저하가 나타난다면, 섬망에서는 질병으로 인한 입원, 큰 수술, 사고로 인한 손상 등의 사건을 전후로 급속하게 인지기능 저하가 나타난다. 하지만, 치매와 섬망의 원인은 분명 다르고, 회복 과정 또한 판이하게 다르다. 따라서 이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_픽사베이


♦ 섬망과 치매

섬망을 치매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우선, 수 년에 걸쳐 서서히 나빠지는 치매와 달리 섬망은 수 시간, 혹은 수 일 사이에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또한, 치매에 비해 의식이나 주의 집중력의 일중 변동이 훨씬 크다. 밤 시간대나 어두운 장소에서 나빠지는 증상은 섬망에서 특징적이다. 섬망에서는 치매와 달리 환시, 환청 등의 환각 증상을 경험하는 경우도 흔하다. 

치료 과정 또한 판이하다. 치매의 경우, 현재 효과를 인정받는 약물도 극적으로 인지기능을 향상시켜주지는 못한다. 다만 증상을 유지시키거나 악화를 늦추어 주는 역할 정도를 할 수 있을 뿐이다. 말 그대로 만성병에 가깝다. 하지만 섬망의 경우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최우선이며, 대개는 원인이 해결될 경우 빠른 호전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 섬망 증상을 보이는 환자 - 가족들을 위한 tip

만약 섬망 증상이 다소 심하게 나타나 불면, 초조, 돌발 행동 등의 나타나는 경우에는 행동 조절을 목적으로 하는 약물을 사용하여 일시적 조절을 도모한다. 하지만, 향후 질환의 경과에 따라 섬망 증상이 일시적이라면 행동조절을 위한 약물은 얼마든지 중단할 수 있다. 

섬망은 심장 수술, 혹은 개복 수술과 같은 큰 수술 직후나, 신체적 기능 저하를 유발하는 질환을 앓은 이후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신체적 상태로 의해서 유발되는 일시적인 뇌 기능 장애라 할 수 있다. 수 일에 걸쳐 급격하게 발생하지만, 그에 맞는 원인을 잘 파악해서 제거할 경우 호전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수술이나 질환으로 인해 입원한 가족을 간병하는 도중 갑작스러운 의식의 혼탁과 인지기능의 저하 같은 섬망 증상이 나타났다면, 치매를 떠올리며 불안해하기보다 섬망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만약, 잘 회복되는 도중 갑작스런 섬망 증상이 나타난다면 주치의에게 이를 알려 신체 증상의 악화 여부에 대한 면밀한 평가가 필요하다. 초기에 신체 질환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중요하다. 돌발 행동에 대비하여 간병을 할 수 있는 이가 꼭 필요하며, 인지기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주변의 사물은 같은 위치에 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낮에는 가능하면 조명을 환하게 하며, 밤에도 불을 다 끄기 보다는 약간의 미등을 켜두어 적절한 감각자극을 주는 것이 인지기능의 혼란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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