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흔히 쓰는 단어, <조증과 우울증>. 의학적인 의미는?

"너 오늘 완전 기분 좋아 보이는데? 조증이네! 조증."
"나 요즘 좀 많이 우울해, 우울증에 걸린 것 같아."

정신의학과 심리학이 대중화되면서, 우리는 관련된 용어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그리고, 조증과 우울증이라는 단어는 기분이 조금 들뜨거나 가라앉는 자신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조증, 우울증이라는 단어와 의학적인 조증 상태(조증 삽화), 우울 상태(우울 삽화)는 큰 차이가 있다.

조증 삽화는, 약 1주일 이상의 기간 동안 과장된 자신감, 들뜬 기분, 수면 욕구의 감소(흔히 3시간 이하의 수면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산만하고 부산한 행동, 고통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쾌락적 활동(쇼핑, 음주, 소비 등)에 몰두하고, 생각이 쉴 새 없이 빠르게 떠오르는 상태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조증과는 그 심각도와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사진_픽셀


우울 삽화 또한, 약 2주 이상 우울감과 만사 흥미 감소가 심하고, 식욕 저하로 인한 과도한 체중 감소, 불면증, 집중력이 떨어지고 활력이 상실되며, 이유 없는 자책과 심한 자살 사고가 유지되는 상태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일시적인 우울감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조울증(양극성 장애)은 조증 삽화만 있거나(혹은 더 약한 수준의 경조증 삽화), 조증 삽화와 우울증 삽화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 진단내려질 수 있다. 우리는 사소한 감정 변화가 있을 때도 '나는 조울증'이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은 의학적인 의미의 조울증은 집중적인 치료와 신중한 관리가 필요한 정신질환이다. 

 

♦ 멀쩡해 보이는 조울증, 변화무쌍한 경과 때문

이 대목에서 의문이 생길 것이다. 조울증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병이라면, 조울증이라고 밝힌 TV에 나오는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멀쩡해 보일까? 조울증으로 치료받고 있다면,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이거나 입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러한 질문들이 우리가 조울증에 대해 가지는 가장 큰 편견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울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생활 전반이 망가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병이 그러하듯이, 조울증 또한 경한 수준과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심각한 수준까지 그 스펙트럼의 폭은 굉장히 넓다. 물론 심각한 수준의 조울증에서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민한 기분과 과도한 감정 기복, 폭력적이고 충동적 행동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적극적인 입원 치료가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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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한 정도의 조울증은 극소량의 정신과적 투약만으로도 충분히 감정과 행동이 조절되며, 직장 및 학교생활, 일상생활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으로 볼 때도, 자신이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 한 조울증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잘 회복될 경우, 기능상의 손상이 없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또, 조울증의 경과에서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조울증의 경과는 변화무쌍하다. 조울증 자체는 잦은 감정변화를 보이며, 그에 따른 행동과 사고가 판이해지는 질환이다. 하지만 증상이 심한 상태라도 적극적인 치료와 관리를 받는다면, 이내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잘 유지되기도 한다. 극적인 감정변화를 보이던 이들이, 치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평온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다. 또, 치료 지속 여부에 따라 안정된 기간이 수개월, 혹은 수년간 계속되기도 한다.

그리고, 조증보다 다소 약한 상태를 뜻하는 경조증 상태(hypomanic state)를 겪고 있다면, 겉으로 보기엔 '조금 수다스럽고 활발한 정도'로 비춰질 뿐이다. 정상적인 상태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한 환자가 자신의 기분을 기록한 아래의 기분기록지처럼, 조울증에서의 증상 경과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조울증이 없는 이들도 하루 중 여러 이유로 조금씩의 기분 변화가 나타날 수 있지 않은가.
 

한 양극성장애 환자가 몇 개월간 기록한 기분기록지(mood chart), 이처럼 감정의 변화는 변화무쌍하며, 정상 범위의 기간도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이라도, 다른 병과 마찬가지로 충분한 치료를 통해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다.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보다, 그들을 향한 편견과 오해를 조금은 덜어내고 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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