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나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자존감을 직역하면, '자신 스스로에 대한 평가'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좀 더 들여다보면, 내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스스로가 가지는 감각이라고 생각하면 적절할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스스로 자신을 얼마나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은 이전부터 이 자존감에 주목해 왔는데, 자존감의 강도(strength)가 심리적 고통과 정신과 질환의 원인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약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는, 자신이 마주하는 모든 상황에 위축되고 주눅 든다는 것이다. 친구가 한 일상적인 인사도 ‘나를 무시한 것 같은‘ 느낌에 감정이 상하게 되고, 자신의 의견을 물어도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잘 해왔던 일들도, 스스로 자기비하에 빠져 자책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고통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세상에는 자존감을 키우는 방법이라 소개된 것들이 무수히 많다. 흔히 권유하는 운동, 외모 가꾸기, 연애 등의 행동 변화가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자존감 저하의 이유를 잘 헤아리고, 이에 기반을 둔 점진적 변화만이 실제적인 자존감 향상을 이끌 것이다. 

 

♦ 자존감 향상을 위한 3단계 - 내면을 알아차리기

좀 더 근본적으로 자존감을 향상시킬 수 있는 3단계를 알아보도록 하자.

 

1) 우선 자신에 대해 알아차려야 한다. 

나의 상처 난 마음을 위로하고, 자존감을 키우는 데 모범답안이 있을까? 어떤 이는 자신이 효과를 봤던 방법이 정답인 것 마냥 '강추'할 것이다. 하지만,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최적의 방법은 제각기 다른 형태일 수밖에 없다. 자존감이 손상된 과정과 원인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에 대한 파악이 중요한 이유다.

자신이 '왜' 자존감이 낮아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자. 불우한 성장 과정일 수도 있고, 어릴 때 겪은 사소한 사건들일 수도 있다. 그 뿌리(기원)를 알아야 한다. 나의 성장 과정, 나에게 영향을 준 사건들, 인물들, 그들로부터 내가 얻은 경험들을 한 번 적어 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힘든 기억을 회피만 해왔다면, 이제는 이를 직면하고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여 그 시기를 충분히 애도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깊어진다. 나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서리 낀 유리로 바라보는 밖은 두려울 수 있다. 유리부터 닦아 내고, 자신의 과거와 마주해야 한다. 괴물 같아 보였던 희미한 무엇인가가 사실은 우스꽝스러운 나뭇가지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유 없이 자존감에 상처를 받는 상황이 반복되어도 과거의 기억들을 살피는 일을 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개 낮은 자존감의 뿌리는 성장과정의 상처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 쌓여 있는 과거의 고통을 잘 정리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우울, 불안, 분노, 좌절 등과 같은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 더미만 남게 된다. 물론, 절대로 누군가의 '탓'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직면하라는 말이며, 애도와 수용을 통해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존감을 향상시키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이다. 

 

사진_픽셀


2)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들, 상황들에 대해 인지해야 한다.

자신이 취약한 상황들, 요소들에 대해서도 알아차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누구나 화를 낼 법한 상황도 나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웃고 넘길 수 있는 일도 나를 자극하는 원인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흔히 자존감이 낮은 이들은 모든 상황이 힘들다며 토로하지만, 유독 취약한 상황이나 인간관계가 존재한다. 낮은 자존감의 뿌리에서 솟아 올라온 앙상한 줄기가 무엇 때문에 자극받는지 알아야 대비를 할 수 있다. 내가 자극받는 요인들(촉발 요인), 그리고 그에 대해 내가 보이는 반응들(행동/감정/사고)이 어떠한지, 그리고 결국에는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를 생각을 해 보자. 머리 안에서 자신의 약점, 그리고 강점에 대해 선명하게 선을 긋는 과정이다. 

대응 카드(Flash card)를 만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예상되는 상황에서의 자신의 반응에 대해 이전과 같은 반응을 답습하지 말자. 어떻게 건강하게 대처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작은 카드에 적어 지갑이나 주머니에 간직하고, 이를 수시로 꺼내서 읽으면서 마음속에 되새기는 방법이다. 가장 취약한 상황에 대해서는 건강한 대처 방법을 휴대전화 바탕화면에 적어놓거나, 업무를 보는 책상 앞에 붙여놓는 것도 좋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한 번의 '이전과 다른 경험'이다. 자신을 힘들게 했던 패턴을 단 한순간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그때가 자신을 동여매고 있던 쇠사슬을 푸는 순간이다. 이렇게 대비를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반응을 하기 위한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3) 삶 속에서 부단한 실천이 필요하다.

내가 가진 습관적 자기 비하, 자책 등은 이미 뇌의 각 부위에서 그 경로(pathway)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상태다. 자기 비하와 자책을 줄이고, 나를 사랑하고 스스로를 위로해줄 수 있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뇌 세포들 사이에 새로운 경로를 만드는 작업인 것이다. 당연히 잘 닦여진 길로 가는 것이 편하고, 익숙하다. 하지만 변화를 위해서는 작은 길을 끊임없이 닦고, 넓히는 노력과 실천, 인내가 필요하다. 결국, 시중에 널린 많은 치료 기법들(technique)은 부수적인 문제일 뿐이다. 변화하려는 동기를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뇌세포들 간의 경로가 바뀌게 되고, 결국 습관이 형성된다.

심리적 변화를 위한 방법에 정답은 없다. 수많은 기법과 치료 방법이 존재하고, 개개인에게 맞는 방법도 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목표는 하나다. 지금까지의 자기비하적인 삶을 멈추고,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변화를 위한 이정표를 먼저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방향을 잘 잡고 나아간다면, 결국에는 '자존감 향상'과 '변화'라는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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