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무기력감, 끔찍한 우울의 늪

우울증은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생소하지 않다. 우울이라는 감정은 누구나 느낄 수 있으며, 주변 환경이나 심적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심한 우울감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다운'되는 때면 우리는 주변 이들에게 '많이 우울하다'는 표현을 하며 휴식을 취하거나, 우울을 줄일 수 있는 즐거운 활동을 찾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휴식과 활동으로 대부분의 일시적 우울감은 금세 역전된다.

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선 우울감은 안타깝게도 삶의 영역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심한 우울감은 잠깐의 활동에도 금세 에너지를 소진케 하며, 무기력감을 불러일으킨다. 매사 의욕이 사라지고, 평소 즐거웠던 일들에도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우울증의 늪에 빠지게 되는 과정이다.

우울증이 만들어내는 무기력감은 꼭 필요한 치료를 받는 데도 큰 장애물이 된다. 우울증이 몸과 마음을 지배한 상태에서는 매사에 회의감이 들고, 부정적인 색안경을 끼고 모든 일을 바라보기 마련이다. 치료 자체에 대한 불신, 무의욕은 결국 치료를 위한 노력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에 병은 더 깊어져 결국 만성화의 길로 접어드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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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울증에 걸린 이가 스스로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할 수 없다면, 가까이 있는 가족, 친구가 그 촉매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힘내라'는 말을 건네는 것 외에도, 우울증 환자를 곁에 둔 이들은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 할까? 

 

♦ 우울증 환자를 도울 수 있는 3가지 방법

우울증으로 인한 무기력을 경험하게 되면, 변화 자체에 대한 의욕이 떨어지며, 치료를 통한 우울증의 극복과 변화를 위한 노력에 대한 양가감정이 생겨난다. 즉, 우울증 증상이 극복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내가 변할 수 있을까'라든가, '아마 안될 거야, 헛물만 켜다 결국 실패하겠지'하는 생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된다. 

물론, 우울증을 겪는 이들에겐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충분한 평가와 적절한 치료를 받는 일이 우선이다. 하지만, 그들의 옆에서 항상 지켜보는 이들의 태도도 경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울증 환자의 가족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와 그의 동료들이 1983년 발표하여 지금은 중요한 상담 이론의 하나가 된 'Motivational Interviewing(동기 강화 면담)'에서 그 해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1) 먼저, 그들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우선이다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이에게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기 전에, 가장 먼저 상대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우울증을 겪는 이들의 사고 과정은 건강한 상태의 그것과는 분명 다르다. 그러니 상대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우울증은 결단력이 약화시키고 우유부단하게 만들며, 양가감정을 자아낸다. 

우울증을 겪는 이들 자신도 이런 변화에 대한 불안과 염려가 클 수밖에 없다. 평소와 다른 그들의 모습에 대한 가족들의 충분한 공감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울증에 대한 지식적인 이해도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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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심스럽게 불일치감을 일깨워주자 

우울증 환자는 변화가 두렵다. 가능하면 제자리에 머무르고, 그 상태로 있으려 한다.

자신의 현재 모습이 유지되는 것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변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경우의 장점과 단점을 함께 노트에 적어보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노트 중앙에 큰 십자가를 긋고, 나뉜 공간에 이 내용들을 적어보자. 이를 결정 저울(decisional balance) 기법이라 한다.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들을 직접 정리하고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양가감정을 구체화시키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이 바라는 건강한 모습, 그리고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여 비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감은 변화의 불씨를 만들어낸다. 

단, 이러한 과정을 바라보는 가족이 직접 변화에 대한 부담감과 압박을 주는 것은 금물이다. 이 과정은 우울증을 겪는 이에게 모두 맡기고, 필요한 만큼만 조언하며 기다려주자. 공감과 지지가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의 작은 불씨를 살리자

우울증 환자들은 무기력과 의욕의 저하로 실생활에서 거듭되는 좌절을 맛본다. 과거 잘 해왔던 일들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진 상태일 터. 장기적이고 거대한 목표, 이를테면 '우울증을 극복하기'와 같은 거창한 목표를 정하는 것은 지레 겁을 먹게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자기효능감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선 작은 목표들을 통해 성공 경험을 조금씩 쌓아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내 삶을 잘 살기'라는 목표보다는 '집 앞 공원에서 30분간 걷기'와 같은 목표가 더욱 현실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작은 목표를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정해보자. '집 앞 산책 가기', '카페에서 가족들과 시간 보내기' 등 지극히 평범한 목표를 설정하여, 달성한다면 진심을 담은 충분한 칭찬과 격려를 한다.

우울증을 겪는 이들이 기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보상을 만들어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보상을 통해 의욕은 점차 강화된다. 단기적인 성취 경험들이 이어진다면, 좀 더 크고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놓는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작은 성공이 우울증 극복을 향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가족들의 지지와 성원은 이를 가능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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