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허지원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인간의 정보처리에 대해 강의할 때면 시스템에 주요한 손상 있거나 적합하지 않은 새로운 정보가 입력되는 경우, 전체 시스템이 파국적으로 오작동하기보다는 훈련된 네트워크 전체의 제한된 기능이 그럭저럭 유지되도록 하는 ‘우아한 쇠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파워포인트의 옛 버전 파일을 열게 될 때 (몇몇 기능은 작동하지 않겠지만) 여전히 구버전의 파일을 읽고 쓸 수 있는 것처럼, 노화에 따른 뇌기능 저하가 이곳저곳에서 문제를 일으키지만 크게 보면 여전히 적절히 자기 생활을 영위하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는 앞으로도 꾸준한 실패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일하는 장면에서,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장면에서,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겠지요. 우리는 그때마다 우아한 쇠퇴, 우아한 실패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점차 늘려갈 회복탄력성에 기반해, 내가 지금 실패한 이 지점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기를 바라는지 거리를 두고 생각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성공할 때에는 아이처럼 굴어도 좋지만, 실패할 때만큼은 더 세련되고 우아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뇌는 그렇게 작동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어, 당신에게 그럴 만한 기질적 자원은 갖춰져 있습니다. 이에, 다음의 세 가지 잔소리를 덧붙이고자 합니다.

 

먼저, 잦은 실패 경험으로 만성적인 무력감과 공허감을 겪는 시기에도, 당신은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뭐라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사랑받지 못했고, 실패했고, 무쓸모한 사람>이라는 과거의 기억은 명확한 근거나 디테일 없이 무턱대고 당신을 규정해버립니다. 내가 정말 모든 사람에게 불쾌한 존재였을까, 내가 정말 살 이유가 없을까, 나는 그동안 계속 불행했을까, 모든 일이 실제로 실패했을까, 하는 질문을 해 보면 그간 습관처럼 과잉일반화하고 파국화한 막연한 세계와 나의 실제 사건들 간 균열이 생깁니다.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에 대비되는 뭔가 행복의 대단한 이상적인 상태가 있을 것만 같아 오히려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을 가볍게 여기기 시작해 그것이 한편으로 걱정이지만, 원래 행복은 그런 거였습니다. 소소함. 홀로 소소하게 행복해왔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머릿속의 비좁은 방에 밀어 넣고는 나는 행복해서는 안돼, 하는 주문과 함께 그 방을 닫아버렸지만요.
 

사진_픽셀


뇌와 마음이 뭉뚱그려 만들어 낸 '나는 이 정도 일로 행복해서는 안 되는 사람' 따위의 프레임은 사실 어쩌면 그 실체가 없기에, 그 불행하고 어렴풋한 윤곽을 지속하기 위한 심리적 에너지는 계속 소모됩니다. 지금-여기에 머물러 순간적인 행복감을 알아차릴 능동적인 주의력과 활력은 그만큼 줄어들고요. 지나온 일들을 곱씹으며 나는 이제껏 그래왔듯 금세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어, 정말 큰 행운이 찾아올 때 '마음을 놓자' 생각하다 보면 시야는 점점 좁아지고 스스로를 더 다그치게 됩니다.

그러나 백일몽과 기억에 잠겨있는 순간, 그리고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은 무력감을 배우는 시간일 뿐입니다. 사회적 불안이 높은 사람들은 긍정적 피드백, 부정적 피드백을 다 받아도 긍정적 피드백을 유독 기억하는 일반대조군과 달리 굳이 부정적 피드백을 기억해 내 자기 개념에 꾸역꾸역 통합시킵니다. 그러는 거 아니에요.

어쩌라고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어쩌라고' 하면서 기억과 사고를 다잡으세요. 기분이 흘러가는 대로 자신을 표류하게 두지 말아요. '뭐라도 하자'며 자신의 외부에서 자신의 머리 끄덩이라도 잡아서 일으키는 게 더 우아합니다. 또다시 바닥이 보이지 않는 불안감과 우울감이 당신을 들여다볼 때, 입 밖으로 소리 내어서라도 그 순간을 당신이 종결해야 합니다. '뭐라도 하자', 꾸준한 습관만이 당신의 길을 냅니다.

 

두 번째로, 당신은 기대해도 됩니다. 기대를 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실망이 너무 고통스럽겠지요. 어떤 경우에도 실망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면 최선이겠지만 우리는 보통 기대가 무너질 때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남에게 전시하기 위한 피상적인 실망이나, 최선을 다하지 못한 자책을 가리기 위한 기만적인 실망은, 당신의 성격구조를 차츰 왜곡시킵니다. 그냥 혼자서 멋쩍게 실망하고 지나갈 일에도 점차 나의 실패와 부족한 점을 굳이 변명하려 하거나 내가 누릴 수도 있었던 것을 자꾸 알리려 합니다. 무엇보다 당신은 실망을 하면 할수록 기대를 하지 않으려 하잖아요.

기대를 하지 않으려 애쓰지 마세요. 당신의 기대는 한 번도 죄였던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그냥 순수하게 기대했던 것뿐이고 당신의 기대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아무 이유 없이 운 좋게 성취될 때도 있고 그저 아무 이유 없이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기대는 죄가 없고, 당신도 죄가 없습니다. 그냥 상황이 그랬습니다. 당신에게 불행감을 가져오는 사건들은 많은 경우 당신의 노력과 기대와는 상관없이 운과 상황에 의해 좌우됩니다.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당신은 한다고 했습니다. 수백 번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일으켜가며 어떻게든 끝까지 하려 했습니다. 당신이 모두 알지요.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주인공이 나였으면 좋았을 일이지만,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 따위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억지로 만들어 낸 가치 아니어도, 당신과 나는 이대로 충분합니다.

기대하세요. 내일의 날씨, 이따가의 점심메뉴, 오랜만의 시내 외출, 개봉할 영화와 새로운 드라마.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실패에도 다시 일어나는 힘은, 지치지 않는 기대에서 나옵니다. 오늘 점심으로 먹은 달걀샌드위치가 형편없었대도, 저녁으로 먹을 소고기덮밥은 괜찮을 수 있습니다. 이번 학기의 학점이 개판이었대도, 내일 보기로 한 영화는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취미는 '기대하는 것'. 백 번을 실망한대도.
 

사진_픽사베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의존성을 비난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그저 유연히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나의 의존성과 취약성, 나의 감정적 약점과 개인적 결함들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이런 건 실패가 아닙니다. 실패일리가요. 이미 배웠잖아요. 대부분의 사람은 원래 의존적이며 사회적인 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차차 나의 이 조각들을 불편감 없이 자연스럽게 바라보고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미 독립성이 높다면, 이는 많은 경우 운에 기반했습니다(풍부한 문화적 환경, 높은 사회경제적 상태와 같이 독립성을 학습할 기회가 더 많았지요).

나의 부적절감이나 의존성에 홀로 수치스러워 날을 세워 사람을 밀어내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어차피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당신 곁에 다정히 남습니다. 그 사이 우리는 천천히 독립적인 삶이 무엇인지 알아나가며 성장할 것이고요. 사람을 만나면 만나는대로, 만나지 않으면 또 그런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날 세우지 않아도 돼요. 노력하되, 애쓰지 말아요. 인지하되, 의식하지 말아요. 자신의 타고 태어난 의존성을 편안하게 인식하고 그 종류와 방향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할 때, 우리는 (의존성 대비) 독립성의 지분을 차츰 높일 수 있는 독자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을 고안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연애를 한대도, 당신이 그 사람과 있을 때에도 행복하고, 혼자 있을 때에도 행복한지를 꼭 셀프 점검해야 합니다. 실제로 연애나 동거, 결혼을 결심할 때, 당신은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외로울 때 동반을 결심하게 되면 괴상한 역동이 생겨 괴상한 짝을 만납니다. 가장 이상적인 연애-결혼은, 분리(독립)와 융합(의존)이 순간순간 유연하게 이루어지는 관계. 부부라면 더욱이 육아문제+시댁/친정문제+경제적 문제+건강문제가 얽히면서 순식간에 병리적 융합체가 돼버리기 십상입니다. 당신 인생의 반을 사람으로 채우려 하지 마세요. 그게 누구든.
 

사진_픽사베이


실패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래왔듯 (일희일비는 고사하고) 일비일비 할 필요는 없음을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과 신념들에서 부드럽게 물러서고 당신의 삶을 그렇게까지 싸잡아서 0 혹은 1 단 두 가지의 결과로 규정하지 않고 해야 하는 일에는 할 수 있는 만큼만 (당신과 당신의 사람들이 불행하지 않을 만큼만) 전력을 다하고 그 이후로는 운명의 시간으로 떠나보내기를 바랍니다.

어떤 경우에는 고통스럽게 아파도 내 의지와 바람과는 상관없이 결국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임을 알고 또 그것이 아주 그렇게 당신 탓인 것은 아님을 부디 알고 당신이 누군가에게 거대한 민폐를 끼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면서 낮아진 외현적 자존감을 보상하기 위해 기이하게 커진 자의식도 내려놓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 탓이 아니에요. 실패에 한없이 추락하는 기분이 든다 해도 그 기분이 당신의 어떤 측면도 감히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더욱이 당신의 과거는 당신의 미래를 정하기엔 힘이 약합니다. 당신은 실제로 힘든 시간을 보내왔지요. 그러나, 그때에는 지옥 같았던 상황, 내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것 같았던 사람들을 지금 다시 만난다고 생각해보면, 그때만큼 내게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나와, 나의 강점과, 취약점과, 행복을 느끼는 지점들에 대해 계속 배우면서 나는 그때보다 너무 성장해버렸습니다. 이제 나를 해칠 수 있는 것은 나 외에는 없을 만큼, 나를 지킬 수 있을 만큼, 나는 점차 어른이 되고 있어야 합니다. (평생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말장난은 집어치워야 합니다. 그만큼 미성숙하게 도피하는 방법도 드물어요. 당신은 어른이면서 순진하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어른이면서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어요.) 우리는 매일 더 어른스러워야 합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의 보호자, 당신의 책임자, 1인 가족의 가장. 당신은 이제 당신의 인생을 살아요. 당신의 가치를 주입식으로 폄하하는 부정적인 사람들, 환경들과 우아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당신이 품위를 잃을 필요가 있는 일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저자 약력_ 허지원 임상심리전문가, 정신건강임상심리사1급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
대한뇌기능매핑학회 젊은연구자상 수상
한국임상심리학회 특임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 "CBT기반 어플- 마성의 토닥토닥" 연구 책임자
한국연구재단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 "정서조절 인공지능 모델 개발 II" 연구 책임자

 

*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해당 글들을 책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저자 : 허지원)
  - 뇌과학과 임상심리학이 무너진 마음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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