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혹시, 나에게 큰 병이?

"건강에 대한 지나친 염려만큼 건강에 치명적인 것은 없다." - 벤자민 프랭클린

자신에게 큰 병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현대인의 주된 사망 원인인 암, 심장병 등과 같은 질병의 가능성에 대한 염려를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피로감, 갑작스러운 통증 등을 경험하면 불현듯 걱정이 더욱 커지기도 한다.

인간의 몸에는 위험에 대비하고 이를 준비하는 본능적 시스템이 작동한다. 실제 위험이 아닌, 위험할 '수도'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바로 불안 체계(anxiety system)이다. 염려는 심계항진, 발한, 떨림, 초조함, 긴장 등을 동반한다. 생소한 신체적 증상들은 심리적, 신체적 불안을 조장하는 것이다.

또한, 과거와는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인터넷을 통해서 무엇이든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질병과 건강에 대한 정보도 바로 그것이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이나 케이블 방송에서는 각종 질병과 건강 관리에 대한 정보가 범람하고 있다. 아프면 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받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환자 스스로가 일종의 진단을 가지고 병원을 찾아가는 경우도 많다.

의학 정보의 비대칭이 해소된다는 면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평범할 수 있는 신체 증상들을 큰 병과 연관 지어 필요 이상으로 염려하는 경우도 흔하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염려에 사로잡혔다가도 이내 증상이 가시면서 불안도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건강 악화나 질병에 대한 생각이 확고해지고, 거기 사로잡혀 지나친 건강 관련 행동을 보이거나 공포감에 떨기도 한다. 이러한 양상이 지속된다면, <건강염려증>이라 부를 수 있다. 

 

사진_픽사베이

 

♦ 건강염려증(질병불안장애)이란?

건강염려증(hypochodriasis)은 말 그대로, 자신에게 심각한 질병이 있다는 생각과 이에 관련한 심한 불안을 경험하고, 집착하는 상태를 말한다. 시작은 사소한 신체 증상에서 시작하나, 왜곡된 생각과 불안이 질병에 대한 염려를 더욱 증폭시키며, 결국 자신은 큰 병에 걸릴 것이라는 혹은 걸려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신체에 대한 불안의 증가는 과도한 행동 변화를 부른다. 반복적이고 강박적으로 자신의 신체 상태를 확인하려는 행동이 나타난다. 어떤 이들은 병원을 방문하여 시행한 검사 상에서 이상 소견이 없더라도, 이를 곧이 곧대로 믿지 않고 여러 병원을 전전한다. 이른바 닥터 쇼핑(doctor shopping)을 하는 것이다. 혹은, 반대로 신체 증상과 큰 병을 연결시키고, 두려운 나머지 병원 예약이나 정확한 검사를 회피하는 회피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건강한 삶과는 거리가 있다. 불안 자체의 증가로 인한 감정의 기복, 과민한 기분, 불면, 초조감 등의 기분 변화 또한 동반될 수 있다. 

현재 건강염려증은 질병분류체계의 변화로 질병불안장애(illness anxiety disorder)로 병명이 바뀐 상태이며, 진단 범주 자체는 축소되었다. 하지만, 약간의 신체 증상들에 대한 과도한 몰두와, 이로 인한 행동 변화가 장기간 지속되어 삶을 힘들게 한다는 내용은 동일하다.

 

사진_픽셀

 

♦ 건강염려증에 대한 우리의 자세

1. 신뢰할 수 있는 병원 방문을 통해 신체 증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병원(가능하면 종합병원 급)을 방문하여 검진을 받도록 하자. 염려되는 증상들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받은 후, 이에 대해 '믿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받는 검사들은 스스로의 염려만 키울 뿐이다. 질병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치료받으면 되고, 질병이 없다면 안심하고 다음 검진을 기다리는 것이다. 


2. 진단을 받은 후 장기적인 검진을 계획할 것 

진단 결과에 따라, 정기적인 검진을 계획하도록 하자. 대개는 6개월 - 수년 단위의 정기 검진이면 충분하다. 신뢰할 수 있는 병원 한 곳에서 지속적으로 검진 데이터를 누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데이터의 신뢰도는 높아질 것이다. 


3. 동반되는 불안, 불면, 기분 변화에 대해서는 정신건강의학과의 도움을 받을 것

건강에 대한 염려가 떠나지 않고, 이로 인한 기분의 변화, 불면 등이 계속된다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면담 및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건강염려증은 한 가지 양상으로만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심한 건강염려는 우울증, 범불안장애, 강박증 등과 함께 나타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적절한 평가와 치료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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