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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마음을 읽다] 동화에서 벗어나 현실 속 차별을 정면으로 다루다. - 주토피아 Zootopia, 2016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8.08.19 04:12

[정신의학신문 :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937년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이래 디즈니는 오랜 시간 동안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꿈과 환상의 세계로 안내해 왔습니다. 많은 어린이들이 지금도 극장에서, TV 앞에 모여 앉아 피터팬과 함께 하늘을 날기도 하고, 마법에 걸린 공주도 되었다가 왕자가 되어 무서운 마녀와 싸우기도 합니다. 초기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매우 단순하고 평면적인 구조를 취하였습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선과 악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하며,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동화 속의 왕자님과 공주님처럼 전형적이었습니다. 설령 원작의 의도와 어긋나더라도 권선징악에 어긋나는 요소들은 과감하게 삭제되고 생략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나며 점차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여주인공들은 왕자님을 기다리는 대신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가거나 직접 자신이 원하는 바를 찾아 모험을 떠납니다. 완벽한 미남 미녀 주인공들의 자리는 장애가 있는 물고기, 주목받지 못하는 비디오 게임 캐릭터, 마법을 통제하지 못하는 공주 등 다양한 입장의 불완전한 주인공들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2016년 디즈니는 시선을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돌립니다. 바로 동물들(Zoo)의 이상향(Eutopia)인 주토피아를 통해서요!

 

Zootopia_월트디즈니

 

수천 년 전,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초식동물들은 포식자의 먹잇감이었죠.
맹수들은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공격하고 해치고 사정없이 죽였어요.
그때 세상은 두 부류로 나뉘었죠. 사악한 포식자와 온순한 사냥감.
하지만 우리는 진화했고 더는 원시적이고 야만적이지 않죠.
이젠 맹수와 먹잇감이 서로 화목하게 살고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되었어요.
여기서 340km 떨어진 주토피아에서 우리 조상들은 하나가 됐고, 이렇게 선언했죠.

‘누구나 뭐든지 될 수 있다.’

-주토피아, 프롤로그 중에서

 

이렇게 애니메이션 주토피아는 시작부터 세계관 설명을 통해 이 이야기가 현대사회를 비유하고 있음을 대놓고 선언합니다. 경찰이 되고 싶어 하는 토끼 ‘쥬디’가 겪는 고난들은 그동안 많은 여성들이 사회진출 시 겪어왔던 성별에 의한 제한과 차별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쥬디는 단지 그녀가 토끼라는 이유만으로 경찰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경찰들과는 달리 주차 딱지를 떼는 일을 맡게 되고, 심지어 그녀의 부모님은 그걸 보고 위험한 일을 맡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며 안도하기까지 합니다. 교활하고 사기에 능한 여우 닉은 편견의 피해자입니다. 그가 유년시절부터 겪었던 여우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은 결국은 그를 그 편견에 걸맞은 인물로 성장하게 합니다. 이는 일부 인종들이 겪는 차별과 편견, 그리고 분노한 그들이 일으키는 여러 범죄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날 두 가지를 깨달았어.
첫째, 상처받은 걸 절대 남에게 보이지 말자.
둘째, 세상이 여우를 믿지 못할 교활한 짐승으로 본다면
굳이 다르게 보이려고 애쓰지 말자.

- 여우 ‘닉’의 대사

 

그리고 애니메이션의 전반부는 차별에 저항하는 쥬디와 편견의 피해자인 닉이 사라진 동물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룹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함께 고난을 이겨내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됩니다. 마침내 그들은 진실에 도달하게 됩니다. 사라진 동물들은 모종의 이유로 주토피아의 사회를 이루는 근간인 ‘본능의 억제’를 하지 못하게 되어 마치 야생동물과 같은 상태가 되었으며 그 자신도 육식동물에 해당되는 시장 ‘라이언하트’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쥬디와 닉은 성공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무지와 야만성은 합리와 정의 앞에 무릎을 꿇는 전형적인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듯했습니다.

 

Zootopia_월트디즈니

 

그러나 인터뷰에서 쥬디가 실종된 동물들(공교롭게도 모두 육식동물)이 야생동물로 변한 이유를 육식동물의 유전적 경향에 의한 것으로 발언함으로써 이야기는 급속도로 입체성을 띄기 시작합니다. 사회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고 이제 차별과 편견의 방향은 역으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특유의 용맹함과 신체능력으로 사회의 기득권을 가졌던 육식동물들은 한순간에 두려운 범죄예비자가 되어 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에게 경원시됩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사회의 차별과 편견 속에서 삭혀왔던 나머지 동물들의 분노가 그들에게 쏟아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실은 밝혀졌으나 세상은 각박해지고 동물들은 서로를 증오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쥬디에게 실망한 닉은 떠나버리고 쥬디도 책임감을 느끼고 경찰을 그만둡니다. 

애니메이션 주토피아는 그동안의 디즈니 애니메이션과는 다르게 우리가 보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우리에게 들이댑니다. 사실 우리는 편견과 차별의 희생자이기도 하지만 다른 누군가를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가해자이기도 합니다. 아이는 이 세상의 모든 공격성이 타인에게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동화 속 ‘마녀’라든지 ‘용’ 등의 환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점차 세상을 경험해 나가면서 위협의 원천이 나 자신에게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자신이 마냥 편견의 희생자인 줄로만 알았다가 자신 또한 누군가에겐 무자비한 가해자였음을 깨닫고 ‘멘붕’한 쥬디처럼요. 그리고 인간의 불편한 자기모순을 묘사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애니메이션의 주토피아는 의인화된 동물들이 뛰어노는 동화 속 나라에서 우리 사회의 모순과 갈등이 반영된 생생한 현대 사회로 거듭납니다. 

 

Zootopia_월트디즈니

 

이후의 전개에서 담고 있는 담론은 만만찮습니다. 한 사람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동안 행해진 반사회적인 행위들은 그 사람이 가진 특정 유전자의 생물학적인 특성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의 구조 때문인가? 만일 그 사람의 반사회적 행위가 그 사람의 생물학적인 특성이라면 그 사실은 사회적 혼란을 감수하더라도 공표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은폐되어야 하는가? 바뀌어야 하는 것은 구성원인가 아니면 사회구조인가?

물론 애니메이션에서는(아직은 이 세상 그 누구도 할 수 없겠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후 동물들을 본능의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원인을 찾는 닉과 쥬디의 모험에서 나름의 의견을 표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애니메이션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많건 적건 타인에 대한 차별과 증오의 감정이 존재함을 표현합니다. 육식동물이든 초식동물이든 상관없이 공격적으로 만드는 열매인 '나이트 하울러‘의 존재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회의 어딘가에는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사람들의 두려움을 선동하고, 때로는 사실을 조작하여 분열시키기를 원하는 사람이 존재함을 경고합니다. 

편견과 차별의 가해자이자 또한 피해자인 쥬디가 또 다른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닉에게 하는 진심 어린 사과와 눈물이, 오직 자신만이 피해자라 생각하며 자신과 같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 내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부시장 ‘벨웨더’의 모습과 대비되며 애니메이션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세상이 타인의 아픔을 바라봄과 동시에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세상이어야 할지, 아니면 끝까지 피해자로 남아 차별과 편견은 그대로 놔둔 채 권력의 주체와 공격의 방향만 끊임없이 바뀌는 세상이어야 할지를 말입니다.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의 결말은 불완전합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자신의 내면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은 너무나 식상할지도 모르고 그 자체가 또 다른 동화일지도 모릅니다. 결론적으로 쥬디가 바랐던 세상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실수와 반성을 통해 쥬디는 이상적인 세상을 위한 한 발자국을 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차별과 편견을 주고받은 경험은 굉장한 상처가 됩니다. 그래서 타인의 아픔과 자신의 모순을 인정하는 것은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에게 가해졌던 편견과 차별이 피도 눈물도 없는 누군가의 악의가 아니라 나처럼 누군가의 편견에 아파했던, 그래서 세상을 의심과 두려움을 담아 바라보았던 누군가의 불완전하고 미숙한 실수였음을 인식한다면, 어쩌면 우리도 타인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을 넘어 진정한 ‘조화’로 가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Zootopia_월트디즈니

 

제가 어렸을 때, 저는 주토피아가 완벽한 곳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현실은  제가 상상하고 꿈꿔왔던 것과는 조금 달랐어요.
우린 모두 단점이 있고, 우린 모두 실수를 해요.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에겐 공통점도 많아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들은 더욱 특별해질 겁니다.

그러나 노력해야 합니다. 당신이 어떤 종의 동물이든 말이죠.
노력하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어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세요.
그럼 알게 되겠죠. 변화의 시작은 당신이고, 바로 나라는 걸요.
정확히는 우리 모두죠.

- 주토피아, 에필로그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wandera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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