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조성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여기저기 흔한 우울

스트레스. 현대인들이 정말 귀가 따갑도록 듣고 사는 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각 걱정에 스트레스, 만원 버스와 지하철에 스트레스, 직장상사 눈치에 스트레스, 줄어든 손님에 스트레스. 이 상황들은 어쩌면 상황이 좋은 경우이고 학업 스트레스, 취업 스트레스, 결혼 스트레스, 출산 스트레스 등 그 종류를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으며 지내고 있을까요? 한 조사에 따르면, 평소 일상생활 중 스트레스를 “대단히 많이 또는 많이 느낀다”에 응답한 19세 이상 서울시민의 비율이 30.3%에 달했습니다(2015년 지역사회건강조사). 당시 남녀의 분포는 거의 비슷한 수준(남성 30.3%, 여성 30.4%)으로 나타났고, 연령대에 있어서는 30대가 37.7%로 가장 높고 70대 이상이 18.3%로 가장 낮은 것으로 연령대에 따른 차이가 다소 높았습니다. 전국적으로 살펴보면, 시군구별 스트레스 인지율은 최소 10.2%에서 최대 38.5%까지 분포되어 있었고, 17개 시도 중에는 세종시가 31.9%로 가장 높은 스트레스 인지율을 보였습니다. 

관점을 조금 달리하여, 우울의 경우는 어떨까요? 

‘최근 1년 동안 연속적으로 2주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우울감(슬픔이나 절망감)을 경험한 19세 이상 서울시민의 비율’은 스트레스에 비해 적긴 하였지만, 7.9%에 달했습니다. 전국적으로 살펴보면, 17개 시도 중 인천(8.1%)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경험률을 차지하였습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그 정도를 명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비율입니다. 신기하게도 우리도 모르는 사이 삶 속에 들어와 있고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걸까요? 자생력이라도 있는 걸까요? ‘우울 바이러스’라도 있어 유행하는 전염병처럼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널리 퍼지기라도 하는 걸까요?

 

사진_픽셀

 

♦ 우울은 우리를 어떻게 갉아먹는가?

이전의 몇몇 연구들은 우울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우울한 기분을 유도할 때 기억들을 부정적이고 편향되게 만든다는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우울한 기분이 들 때 많은 참여자들이 자신들에게 일어났던 긍정적인 사건들을 덜 회상하고 부정적인 사건들을 더 많이 떠올렸습니다. 이를 두고 일반적으로 우울한 사람들이 부정적인 사건을 더 많이 경험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학자들은 우울한 사람들을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기분-유도 편향(mood included bias)’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우울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부정적인 사건에 더 초점을 맞추고 긍정적인 측면에서 주의를 덜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우울할 때 사소한 일도 안 좋게 바라보고 오해하고 짜증도 많아지는 것은 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우울은 인지 기능의 저하를 가져오기도 하는데, 이 또한 사람들의 삶을 갉아먹습니다. 우울하면 집중력이 떨어져 업무 수행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대단한 일을 할 때만 영향을 주는 것 같이 들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예전 같으면 10분이면 끝낼 간단한 문서 작업을 한 시간이 걸려도 작업을 시작도 못하고, 뚝딱 해치우던 집안일도 방치하게 되고,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를 이해도 못하여 끼지도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는 다만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업무적인 피해를 주기 때문에 점차 동료들이 참지 못하는 일들이 생기고, 가족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고,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즉, 쉽게 말해 우울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이 우리 주변 곳곳에 있고 전염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진_픽사베이

 

♦ 우울에 대처하기

우리 모두는 우울에 대처하는 나름의 비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친구나 가족을 붙잡고 이야기하며 풀기도 하고, 영화보기나 운동처럼 좋아하는 일들을 하기도 하고, 이 생각 저 생각 모두 싫어서 그냥 잠을 자버리기도 합니다. 가벼운 우울감에는 이런 방법들이 효과가 있을 때도 있지만, 상당기간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우울일 때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본인과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우울의 늪과 전염에서 빠져나오게 해주는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항우울제, 훈련받은 전문가들을 통한 인지행동치료, 면담치료, 경두개자기자극술 등. 이런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 외에도 개인이 치료를 받는 과정 중에 혹은 평소에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들이 있을 겁니다.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우선 내가 우울한 기분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가 현재 우울하기 때문에 나의 경험을 정확히 파악하기보다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점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나의 상태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을 마련할 수 있고 부정적인 생각들을 곱씹는 ‘반추적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됩니다. 

현재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우울한 나’의 생각이지 ‘평소 나’의 생각이 아니라는 점을 주지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우울할 때는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일들도 부정적인 기분과 맞물리게 되면 내가 손쓸 수 없는 것처럼 압도적으로 보이고, 그 결과 진실로 여겨지는 일들이 반복되는 ‘인지적 왜곡’이 반복되기 때문에 이를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울할 때 생각을 끝없이 해보는 것은 결국 우리의 기분을 갉아먹는 일이 되기 쉽기 때문에 경계가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복잡해 보이는 생각들은 글로 써보면 명확해지고 큰일이 아닌 경우가 많아 도움이 됩니다. 외에도 평소에 본인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일들을 정리해두어 우울할 때마다 한 가지씩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되고, 맨손 체조나 스트레칭과 같이 간단히 몸을 써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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