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John Lee]

 

 

자동차보험회사의 분류를 운송업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건 확률을 통해 수입과 지출을 예상하는 금융업이다. 농산물 선물상품을 거래하는 회사를 농산물 회사라고 하진 않잖은가.

보험회사는 최대한 많은 보험료를 거둬 최대한 적은 보험금을 지급하고 차액으로 운영되는 회사다.

독점 기업이 아닌 데다 법적인 한도도 있어서 보험금을 무조건 낮출 수 없고 가입자 수도 중요하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게 이 업계의 생리다.

 

전국 자영업자들의 목표는 돈을 벌어 자식 먹이는 거다. 그걸 제일 잘할 수 있는 직업을 부차적으로 찾을 뿐이다.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해서 학자 스타일의 사람이 영업직을 택하면 결국엔 못 견디고 나가떨어진다.

보험회사 직원이나 자동차정비소 사장이나 자기 자식이 제일 중요한 건 매한가지다. 누가 더 착하고 나쁠 것도 없다.

 

하지만 보험회사 본사 사무직은 죽음을 보고서에 적힌 숫자로만 접하고, 자동차 정비소 사장은 구겨진 차량의 실물로 본다.

이 현장감의 차이는 크다.

차량의 안전에 대해 정비소 사장이 더 신경을 쓰는 것은 양심의 차이가 아니라 접하는 환경의 차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죽어가는 아이 한 명의 사진이지, 100만명이 아사했다는 통계가 아니다.

 

사진_픽셀

 

보험회사가 지급되는 보험금의 액수를 줄이기 위해, 어지간한 손상은 덕트 테이프로만 수리할 수 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자식 대학 입학금을 마련해야 하는 정비소 사장은, 100만원짜리 수리가 3만원으로 퉁쳐지는 것에 분노한다.

그리고 동시에, 뼈대가 나간 차를 테이프로 붙여 임시방편으로 운행하는 데에서도 직업인으로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한 번 터져버린 운전대 에어백 자리를 그냥 테이프로 붙여놓는다고 해서 당장 운전에 지장 될 부분은 없다. 다음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그런데 소비자들은 뭔진 몰라도 자기한테서 수리비를 받아 챙기는 업자들이 분노하는 걸 보니 소비자에게는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 차액은 보험회사 주머니에 들어가 직원의 성과급에 반영된다.

업자는 등록금을 대기 위해 대출을 한다.

소비자는 다음 사고가 나서 죽기 전까지 이전 수리를 비양심 과잉 수리라고 비난하며 만족하며 타고 다닌다.

 

오늘도 보험회사들은 자동차 사고와 행복한 가족의 이미지로 광고를 하지만, 회사의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

사람이 환경의 동물이듯 기업도 태생에 영향을 받는다.

소비자가 충분히 멍청하다면 보험료 납부자를 줄이지 않고도 보험금 지급을 줄일 수 있다.

 

정부의 관심은 어차피 지지율에 도움되지 않는 노인을 더 살리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예산을 걷어 최대한 적게 쓰고 남는 돈으로 진짜 하고 싶은 사업들을 하는 데에 있다.

자영업자에게 자식이 있다면 정부엔 당원이 있다. 본인들도 신경 쓰지 않는 자기 목숨을 국가가 챙겨주리란 생각은 너무나 순진하다.

결식아동이 밥을 못 먹는다고 밥값을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김밥 값을 낮추기만을 강요하면, 결국 오징어무침 없는 충무김밥을 먹게 해준다는 자화자찬만 남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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