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조성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늘도 육아를 하고 계신 수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여러 실랑이를 벌이고 계실 겁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을 향해서 혹은 아이들이 위험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조금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 계속 눈을 뗄 수 없고 뭔가를 해주거나 혹은 못하게 합니다. 이 실랑이가 피할 수 없는 일인 것을 알면서도 ‘이 아이가 알아는 듣나?’라는 생각에 진이 빠지기도 하고 고운 말보다 거친 말이 혹은 행동이 앞서기도 합니다.  

작년에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아기들이 어린 엄마들을 대상으로 2개월 간 프로그램을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정신질환들과 함께 산후 우울, 육아법, 육아 시 부부 사이의 이야기 등을 다루기도 하고, 함께 명상, 요가, 원예 및 미술 치료 등등을 함께 하며 자연스럽게 본인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들을 가졌었습니다. 매번 5~10명 정도의 육아고수 희망자들이 참여하여 활발하게 본인들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공부도 하며, 무엇보다 육아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에 대해 엿볼 기회를 갖는 공유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아이들의 의사를 얼마나 존중해줄 것이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던 저는 ‘무조건 안 된다고 하지 않고 아이의 뜻을 최대한 존중해줘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의견을 피력하였습니다. 순간순간 아이들의 결정을 최대한 존중해줘야 한다고 상식에 입각하여 설명을 이어가고 있을 때 한 엄마가 입을 떼셨습니다.  

“제 조카가 지금은 다 컸는데, 어려서 피아노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피아노 학원을 너무 가기 싫어하는 것 같아서 하루는 ‘피아노 그만 갈래?’라고 엄마가 물었고 아이는 그만 배우겠다고 답을 해서 그렇게 해줬어요. 그런데 다 커서 하루는 ‘왜 피아노를 더 안 가르치고 그만두게 했느냐?’고 묻길래 ‘나는 분명히 너한테 물어봤다’고 하자 ‘어린아이가 뭘 안다고 그냥 시키지 그랬냐’고 이야기를 하더래요. 이런 것들 보면 그냥 부모가 묻지 않고 시키는 게 맞는 거 아니었을까요?” 
 

사진_픽셀


얼핏 보면, 조카 이야기도 맞는 얘기 같고 가끔은 부모의 결단이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 안 되는 점은 ‘저는 분명히 아이한테 물어봤는데요?’하는 태도가 아니라, ‘평소에도 아이와 의사소통하는 연습이 잘 되어 있는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평소에 아이와 의사소통 함에 있어서, 아이의 의견을 잘 묻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피아노 그만둘래?’라는 질문을 한다면 열이면 열 그만둔다고 할 겁니다. 평소 형식적인 의사소통만 이뤄진다면, 아이는 본인의 상태에 대해 생각하는 훈련이 없어 부모가 시키는 대로 혹은 그냥 별생각 없이 무언가를 택해나가기 쉽습니다. 반대로 평소에 사소한 것이라도, 아이가 못 알아듣고 있는 것 같더라도 아이의 의사를 물어보고 존중해주어 왔다면, 아이는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많은 내적 작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 의사소통의 역할과 학습 

한 가정은 아이가 부모와 형제자매를 통해 행동의 표준과 정상적이고 모범적인 행동이 무엇인가를 배우는 장소입니다. 그 사이에는 끊임없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의사소통은 이러한 배움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한 아이가 가족 간의 관계를 통해서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조절해 나가는 것은 대인관계에 중요한 요소들을 길러내게 하고 이 과정이 결국 의사소통의 본질입니다. 이를 통해서 사회성, 자기감정의 표현, 자기 태도 등을 인지하고 표현하게 해줍니다.  

가족 내에서 배운 의사소통방법과 의사전달방법은 성인이 되어서 다른 사람과 얼마나 잘 관계를 맺게 하는가, 본인의 의사를 얼마나 정확히 표현하는가, 본인의 뜻을 얼마나 정확히 인지하게 되는가를 결정짓는 요소가 됩니다. 평소에 정확한 의사소통을 연습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의사소통만을 한다거나 일관되지 않고 엇갈린 의사소통을 하거나 불확실한 의사소통을 하게 된다면, 아이들은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다른 사람의 뜻을 알아차리기도 어렵게 됩니다.  
 

사진_픽셀


♦ 의사소통 버릇 

고된 하루를 보내고 퇴근했을 때는 이미 아이가 자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장 행복한 하루의 마무리는 아내의 이야기보따리입니다. 사진,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오늘 아이의 일과를 선명히 보여주기도 하지만, 더 기대가 되는 것은 오늘 두 돌이 막 지난 딸과 어떤 대화를 했는지입니다. 딸이 어떤 떼를 썼고 엄마는 그때 마음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 아이가 하고 싶은 게 있다고 이야기할 때 어떤 반응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 위험한 일 혹은 과하게 어떤 일을 하려고 해서 이를 말릴 때 어떤 말로 무슨 말을 했는지 이야기를 생생하게 해주곤 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를 하면서, ‘알아는 듣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이 자주 같이 등장하지만, 그럴 때마다 흐뭇하게 아내를 다시 응원해주고 딸과의 ‘의미 있는’ 의사소통을 부추기곤 합니다.  

부모로서 아이와 의사소통을 하면서 이유를 설명을 해주고, 뭘 원하는지 혹은 하기 싫은지 의사를 물어보는 과정이 귀찮고 지치기도 합니다. 때로는 물어볼 여력마저 없기도 합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 과정을 해 버릇하고 반복이 되면, 아이는 본인이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이 부분은 학원에서 가르쳐 줄 수도, 아무리 비싼 과외를 한다 하더라도,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깨우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순간순간에 아이를 욕구를 파악하고 이에 대해 정확히 묻고 답하게끔 하는 게 부질없어 보여도, 아이에게 큰 재산을 물려주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큰 재산으로 물려줄 수 있는 좋은 버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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