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회사원 '나화나'씨는 결혼 3년차이다. 아내와 관계도 좋고, 회사에서도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그에게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갓 돌이 지난 아기의 울음소리를 못 참는 것이다.’ 아기가 너무 심하게 울어대서 짜증을 내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우는 것을 보면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저 놈 바보 아니야? 모자란 것 아니야?’라며 아내에게 소리를 지르고, 아기를 잡고 훈계를 하기도 했다. 아내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남편이 집에 들어올 때가 되면 우는 아이를 얼른 다른 방으로 숨겼다.

 

'나화나'씨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돌이 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누구보다 아기를 귀여워하고 아기가 우는 것을 잘 달래주었는데 돌이 될 무렵부터 서서히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회사 일이 힘들어졌다거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진 것도 아니었다. 아기에 대한 마음이 갑자기 변해서 미워졌다거나, 아기를 키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나, 알 수 없는 불안이 '나화나'씨를 괴롭히는 것도 아니었다. '나화나'씨 역시 아기는 우는 것이 당연하다는 아내의 말이나 주위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만, 우는 아기를 보면 ‘왜 울고만 있지? 모자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 ‘정신결정론’과 ‘무의식적 정신과정’을 중요시하였다. 개인의 정신활동은 아동기 경험에 의해 지배를 받으며 아동기의 경험 내용은 빙산의 아랫부분처럼, 대부분 의식할 수 없는 무의식의 영역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화나'씨의 부모는 '언어장애인'이었다.

 

'나화나'씨의 부모는, 아기인 그가 우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기인 그가 아무리 울어도 돌아오는 부모의 반응은 없었다. 아기인 그는 이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 울어봤자 소용없구나. 바보만 우는구나!’ 아무리 울어도 돌아봐주지 않는 부모와 세상을 향해 원망을 하고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나화나'씨의 부모는 아기를 극진히 보살폈다고 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를 알기에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아기의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할까봐 번갈아가며 한 사람씩 꼭 옆을 지켰다고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시간이 흐르고 아기가 움직일 수 있을 때가 되자 그런 모습은 서서히 줄어들었던 것이다.

 

[프로이드는 바깥으로 나타나는 사람의 부적응 행동의 수정이나 새로운 바람직한 행동의 학습보다는 자기 이해를 위해 과거 속으로 깊이 탐색해가는 것을 치료의 기본 과정으로 생각했다.]

 

‘1세 아이가 우는 것은 당연하지 않소.’ 아무리 논리적으로 이해를 시켜도 이런 모습은 고쳐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한 화를 참는 방법을 아무리 가르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우는 아이를 보고 화가 나는 '나화나'씨에게 ‘깊은 호흡을 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떠올리세요’라고 해봤자 잠깐의 효과만 있을 뿐이다. 인간의 뇌 구조를 봤을 때, 감정이란 것은 자극이 없다면 지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시에 화가 난 상황을 모면하는 것은 훌륭한 방법이다. 하지만 화가 나는 근본 원인 자체를 치료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 날 봐주지 않을까? 엄마가 원망스러웠어요. 울고만 있는 나 자신이 애처롭고 한심해 보이기도 했고요. 아기가 우는 것을 보면서 울고만 있는 나 자신이 떠올랐어요. 실은 아기한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날 봐주지 않는 엄마한테 화를 내는 것 같아요.’

 

[과거 탐색을 통해 자신의 문제점의 원인을 아는 것, 이것이 정신치료의 첫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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