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가 더 많이 좋아해서 주도권을 잃고 마치 짝사랑처럼 속앓이를 하면 그건 내가 손해, 아니 연애를 잘못하고 있는 걸까? 그건 사랑이 아닌 걸까? 사실, 이번 남녀관계 시리즈는 바로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연애할 때, 득실을 따지는 것 자체가 사실 우스운 일이지만 실제 주위에서는 그런 일을 흔히 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많은 이들이 나를 사랑해주길 혹은 내가 사랑받기를 원하지, 내가 사랑하거나 사랑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는 것 같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방을 떠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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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환경이나 자신이 겪어온 경험 및 판단이 다르므로, 우리는 사람을 만나서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것이 참 쉽지 않다.물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정도는 맞춰줄 수도 있겠지만, 요즘엔 그게 오래가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린 한배를 탔으니까 무조건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방향으로 가야 돼!' 이런 말들이 강요처럼 들리면, 왠지 불편해져 버린다.'~해야 한다!'라고 강요하는 순간 희한하게도 그건 이미 하기 싫어지게 된단 말이다.'이렇게 획일적으로 맞춰서 살려고 같은 배를
[정신의학신문 :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태어난 지 1달이 지난 후 수개월 동안 아기는 굉장한 도약의 시기를 지납니다. 이때부터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 방긋 웃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사회적 미소’가 나타나는 것이지요. 아마도 아기는 특별히 사람의 얼굴에 반응하게끔 타고난 듯 보입니다. (대강 종이에 그린 얼굴 그림에도 아기는 미소를 짓는답니다.)이 능력은 부모로 하여금 아기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생애 처음으로 맺은 인간관계는 점차로 더 특별해지고 깊어져 갑니다. 이 시기 아기는 몸을 통해 우연
고등학교 때부터 소위 머리가 굵어지면서 사춘기에 학업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엄마에게 부쩍 화를 잘 냈다.별것도 아닌 것에 예민하게 굴고, 문도 쾅 닫아버리고... 엄마 말은 고리타분한 옛날 얘기라서 들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며,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라고까지 여겼다.엄마도 사실은 좀 직설적인 성격이라, 대놓고 당신께서 전부 옳다고 주장했기 때문에(실제로 엄마 말이 대부분 다 맞긴 했다) 더욱 반발심이 컸던 것 같다.그 후로도 끊임없이 누가 옳은가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결혼 후, 딸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신기한 일이
우리 집 욕실의 온수기는 좋지 않다. 처음엔 뜨거운 물 쪽으로 끝까지 돌려서 틀어도 한참 동안 찬물이 나오다가 어느 순간 서서히 따뜻한 물이 되더니, 갑자기 뜨거운 물이 마구 나온다. 그러면, 또 그때부터는 찬물 쪽으로 틀면 또 금방 찬물이 안 나오고 좀 이따 갑자기 찬물이 나온다. 몸을 담글 만한 적정온도는 양쪽 온도를 한참 왔다 갔다 해야 겨우 맞춰진다.남녀관계도 이런 식으로 서로의 적정온도를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다만, 온도차가 너무 커서 뜨거운 물 혹은 찬물만 한동안 계속 틀어야 된다면 적정온도를 맞추는 데 시간이 오래 걸
[정신의학신문 :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직 엄마의 뱃속에 있을 무렵, 아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필요한 영양분과 적당한 온도, 편안한 환경이 저절로 제공되었거든요. 그저 가만히 있어도 모든 것이 해결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태어나고 나면 아기의 처지는 사뭇 달라집니다. 엄마와 연결해 주던 탯줄이 일단 끊기고 나면, 아기의 내적 욕구, 즉 공복의 불쾌감과 같은 각종 신체적 욕구는 더 이상 저절로 충족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아기는 생애 처음으로 불쾌한 느낌과 맞닥뜨리게 됩니다.아동 발달을 연구했던 헝가리
임상에서 많은 남녀들과 상담할 때마다 항상 드는 몇 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왜 둘 중 한 사람이 실제로 상대방을 진심으로 좋아해서 잘 맞춰주는데도, 그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그 상대방조차 만족하지 못할까?' 하는 것이었다. 거기엔 물론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애정의 온도차로 한번 바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그려보았다.남녀관계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50대 50인 그런 대등한 관계가 있을까? 정말 쉽지 않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남녀 간의 애정에서도 어쩔 수 없이 상대적 강자와
의처증(의부증), 즉 질투형 망상장애는 앞서 언급했듯이 치료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그런 요소를 잘 해결하기만 하면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 (물론, 그런 요소들을 해결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경험상으로는 참 많은 실패를 겪었다. 지금 돌이켜 현실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볼 때, 입원치료가 그나마 본인 스스로와 가족들이 어느 정도 상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질투형 망상장애 환자를 자주 보면서, 두려운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노화의 과정이 가끔 필요하겠단 생
[정신의학신문 : 박정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망상장애, 그중 질투형 망상인 의처증(혹은 의부증)은 참 어려운 질환이다. 병을 치료하는 방법 중 가장 흔한 것이 발생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인 자체를 제거하기가 참 힘들다. 대개는 비가역적인 요인들이 많아서(퇴직 및 대인관계 축소, 건강악화, 기능저하 등) 그런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한 시간과 노력이 엄청 필요한데, 정작 환우는 병식이 없어서 전혀 노력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다.가끔은 의처증이 있는 환우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도 하는데, 그들 또한 괴롭기는 마찬가지임에 틀림없다. 아니, 훨씬 더 괴로울지도 모
[정신의학신문 :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이를 키우고 계신 분이라면 누구라도 비슷한 느낌을 느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처음 아기를 집으로 데려오던 순간의 설렘과 긴장, 곧이어 뒤따르는 부담감 말입니다. 우리는 막 우리를 찾아온 주인공의 리듬이 낯설기만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불편해서 울고 있는지 잘 짐작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알 수 없이 우는 갓난아기를 붙잡고 함께 울고 싶어 졌다고 하소연하는 새내기 부모님들을 종종 봅니다. 하지만 ‘나만 이런 것인가?’, ‘나는 좋은 부모의 자질
발 뒤꿈치에 아주 작은 가시가 박혔을 때, 그 위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잘 걷지도 못하고, 아파서 발을 딛기도 겁이 날 정도이다. 근데, 사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고 말을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별거 아니야, 금방 좋아질 거야!" 도움 안 되고 와 닿지도 않는 말만 한다. 그래서, 나 스스로 아픔을 해결해보고자 내 살을 파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헤집기도 하면서, 아프지만 겨우 가시를 없앴는데... 그래도, 여전히 아픔의 여운 때문인지 발은 움츠러든다.마음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상대방이 별거 아니라
망상장애 중 굳이 의처증 증상을 뽑은 건, 별다른 이유나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망상장애 중 질투형 망상은 일반적인 망상장애와는 달리 특이하게도 남성에게서 더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 임상경험에서도 자주 접해왔던 터라 한번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의부증, 남편을 의심하는 증상 또한 생기는 기전이나 과정 자체는 이와 거의 비슷하다 볼 수 있다.)중년 이후의 남성에서는 특히, 중년의 위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존감의 저하가 의처증 증상에 상당히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그런
최근 들어, 청장년이 아닌 현실적으로 외도의 가능성이 비교적 낮은(없다는 건 아님) 중년 이후의 노년에 가까운 의처증 증상 환우분들을 특히 자주 보았다. 본인 및 가족들의 얘기를 잘 들어보면, 누가 봐도 부인이 외도를 했다고는 볼 수 없는데... 본인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참 안타깝고 때론 슬퍼 보이기까지 해서,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을 좀 다뤄보고자 의처증 시리즈를 그리게 되었다.망상장애는... 망상의 대상에게는 미치고 폴짝 뛸 정도로 힘들게 하지만, 그 외의 대상들에게는 멀쩡하게 대하고 일상생활도 곧잘 한다. 즉, 부인과
만남을 통한 연애가 어느 정도 몸을 푸는 연습 게임이었다면, 사랑의 과정은 본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실제 사랑의 과정은 상상 속의 장밋빛 대로가 아닌, 생각보다 만만찮고 힘든... 그런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다듬어서 상대에게 맞추고, 그런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도 발전 및 성장하도록 애쓰는 것, 그런 과정을 통해 때론 큰 기쁨을 얻지만, 그만큼 노력이란 수고가 따르는 그러한 훈육 과정 중 하나이다.서로를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고 조각을 맞추었는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시간이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서 연애를 한다는 것 자체도 참 쉽지 않지만, 말 그대로 운명의 상대를 찾아 사랑은 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하지만, 사랑을 한다는 것이 어렵고 힘들긴 해도 그만큼의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들 지레 겁먹고 회피하거나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연애라는 과정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은 꽤 있다. 먼저, 아무리 나 자신을 잘 안다고 해도 타인이 보는 내 모습은 잘 모를 수 있는데, 거울 역할을 하는 상대방을 통해 나 자신을 제대로 알 수 있다. 또한, 나와 비슷한 이를 만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