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UNIST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학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의 경우 동의 없는 신체접촉이 대부분이고, 검찰까지 가더라도 처벌이 어려워 기소유예나, 증거불충분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법 체계에서는 경미한 사건임에도, 피해자의 고통은 심각합니다. 가해자를 보면 불안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며 죄책감을 느낍니다. 우울하고 잠을 못 이룹니다. 힘들어하는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납니다. 가해자의 반성을 기다려보지만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모습에 또 화가 납니다. 나를 힘들게 한 가해자가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23화 아직 나는 헤매고 있지만 “내가 원하던 삶은 이런 게 아니었어.”정말입니다. 나는 지금의 제 삶을 단 한 번도 원한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도 없습니다. 상상해볼 수 있었다면, 조금 더 단단한 마음을 준비했을 겁니다. 금전적으로도, 재능적으로도, 삶의 모든 면들에서도 말입니다. 삶은 우리를 상상할 수 없는 곳에 던져놓고, 준비할 수 없게 만들어놓습니다.지금이면 다섯 번쯤은 졸업했을 대학원을 접어야 했을 때도 정말 많이 슬펐습니다. 제 열정이 그만큼 타오른 게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꼭 해보고 싶던 꿈을 접어
[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염지연 전문의]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인 A양은 요즘 남자 친구 B군 때문에 잠을 설치기 일쑤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동갑내기 B군은 철이 없기는 해도 정이 많은 아이였다. 그런데 거친 아이들과 사귀면서 성적도 떨어지고 성격도 점점 난폭하게 변해갔다. 화가 나면 안 하던 욕설을 퍼부을 때도 있었다. 스트레스가 많아 그런가 했는데,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듯했다.하루는 마음 단단히 먹고 그러지 말라고 야단을 쳤다. 그랬더니 갑자기 얼굴로 주먹이 날아왔다. 순식간이었다. 코피가 났다. B군은 화장
[정신의학신문 : 구로 연세 봄 정신과, 박종석 전문의] ‘의존’이라는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인격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혼자 있기를 불안해하는 것이다. 가족이건 친구건 연인이건 누군가에게 항상 기댈 곳이 있어야 안심을 한다. 흔히 ‘의존적’이라는 말은 부정적, 열등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사실 모든 인간에게 완전한 독립이란 가능하지도 않으며 건강한 것도 아니다. 우리 자신을 유지하고 자존감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인정과 교감, 공감, 믿음, 존중을 필요로 한다. 공동체에 의지하고 가족을 형성
[정신의학신문 :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 전문의] 셰익스피어 작품 속 햄릿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말합니다. 그의 질문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다른 형태로 변주되고 또다시 반복합니다. 사람들은 햄릿을 ‘생각 많고 우유부단한’ 인물로 꼽을 때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습니다.그렇지만 이런 모습은 현대에도 흔한 편입니다. 사람들은 본인 대신에 필요한 물품을 골라주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선호하고, 헬스이용권을 끊기 주저하고 있을 때 무료체험권이 제공되면 결정하기는 더 쉬워집니다. 이렇듯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타인
[정신의학신문 : 나종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노인 한 사람의 죽음은 도서관 하나가 불에 타서 소멸한 것과 같다. - 코트 데 부아르 격언에릭 라슨 (Erik Larson)은 라는 소설에서 나치 정권 하에서 미국 외교관 집안이 겪는 경험들을 상세히 묘사한다. 숨 막히는 나치 정권의 탄압 하에서 많은 유대인들은 수용소에 끌려가 죽음을 맞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빈번했다. 이는 나치 정권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기도 했지만(1), 명백한 죽음의 공포 앞에서 필연적으로 느
[정신의학신문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홍나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노인 우울증이란 무엇인가요?A. 노인 우울증이라고 해서 따로 진단을 내린다기보다는, 말씀하신 거처럼 어르신에게 생기는 우울증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일반 성인 우울증과 약간 다른 면들이 있고, 그렇다 보니 저희가 따로 진단하고, 치료하고 있습니다. Q. 노인 우울증을 따로 뺄 정도로 우울증에 걸리시는 분들이 많으신가요?A. 네, 일반 성인들보다 조금 더 많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전 세계적으로 한 10~15% 정도가 생긴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 쉽게 설명
[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여보, 이게 뭐야? 아니 집에만 있으면서 뭐하느라고 신용카드를 박박 긁어서 300만 원이 넘게 쓴 거야? 당신 도대체 내 월급이 얼만지나 알아?”“꼭 필요하니까 샀지, 왜 샀겠어?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친구들 만나지도 못하는데, 그럼 집에서 쇼핑이나 하지 뭘 할 게 있냐고?” “지금까지 이런 조합은 없었습니다. 시원한 여름 면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모자까지 합쳐서 단돈 10만 원. 정말 파격적입니다. 곧 마감하겠습니다!”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쇼핑호스트의
[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임찬영 전문의] 우리의 삶은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입니다. 아침 출근길에 아침메뉴를 선택하는 일, 지하철을 탈지 버스를 탈지 고민하는 일처럼 소소한 선택이 있습니다. 때로는 대학을 진학하면서 학과를 선택하는 일, 중요한 사업 계약 문제처럼 중요한 선택도 있습니다.이런 결정의 순간에 우리는 가장 나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일반적으로 가장 나은 선택이라는 것은 나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선택을 말할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나에게 손해가 되는 선택을 피하려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고
[정신의학신문 : 논현동 마인드랩 공간 정신과, 이광민 전문의, 의학박사]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는 투명합니다. 때로는 직설적이고 날카롭게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죠. 이는 아이들의 생각에 비교적 선입견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체면을 차리거나 예의상 해야 하는 말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체면치레나 선입견이 없는 어린아이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더라도 금세 친해지고 사소한 일로 다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같이 지냅니다. 그런 아이들도 자라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고 사회적인 정보가 쌓여감에 따라
[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람은 다양한 형태로 죽는다. 침상에서 깊은 잠에 빠지듯 죽기도 하고, 만성 질환으로 서서히 또는 사고로 갑자기 죽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형태의 죽음이라도, 망자가 남긴 온도는 모두 다르다. 잠을 자듯 평온하게 돌아가시더라도 고인도 알지 못했던 부채나 유산 분배 문제로 가족들이 혼란에 빠지는 경우도 있으며, 갑자기 돌아가실지라도 생전에 넉넉히 베풀고 지내던 고인의 품성 덕에 남은 이들이 덕을 보는 경우도 있다. 자살 역시 온도를 가지고 있다. 자살을 수행하기 전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22화 우울한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해요 - 2 우울하지만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되셨다고요? 네, 좋습니다. 그런 당신에게도 식물을 추천하고 싶네요.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됐는데, 정작 갈 곳 없는 경우도 참 난감하니까요.우선 식물을 구경해야겠죠. 양재동화훼공판장, 강남꽃도매상가, 종로꽃시장 등이 있습니다. 양재동은 절화(잘라진 꽃:우리가 일반적으로 꽃다발에서 보는 꽃)와 분화(화분에 심어진 식물) 화분들을 모두 판매합니다. 그중에서 분화가 더 발달되어있어요. 강남꽃도매상가는 이름대로 절화(꽃)를 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절화를 담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힘든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그래서 위로의 메시지가 간절한 요즘이다. 인터넷의 글로, 책으로, 전문가의 입을 빌려 마음을 다독이는 이야기들이 범람한다. 그 글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담고 있다. ‘힘든 것들도 이렇게 보면 꽤 괜찮아. 모든 일에는 괜찮은 면들을 담고 있어. 너는 꽤 괜찮은 사람이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앞으로는 좋은 일이 가득할 거야. 다 잘 될 거야.’그런데 마음이 힘들 때 그런 문장을 읽으면 왠지 마음속에 그런 생각들이 따라온다. '정말
[정신의학신문 : 구로 연세 봄 정신과, 박종석 전문의] 회피성 인격을 가진 사람은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는 기질적 특성이 있다. 기질을 분류하는 각각의 기준 중에 ‘새로움 추구(Novelty Seeking)’, ‘위험 회피(Harm Avoidance)’라는 항목이 있다. 심리학적 의미에서 새로움 추구는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요”라고 답할 수 있는 기질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항상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나 새로운 방식을 찾고, 다른 선택을 시도하는 성향을 말한다. 예를 들면 항상 가던 음식점이 아니라 새로운 맛집을 찾으려
[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혜민 씨는 요즘 밤잠을 이룰 수가 없다. 어머니 음성이 머릿속을 맴돌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는 최근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건다. “혜민이냐? 왜 안 와? 언제 올 거야?”“엄마, 갈 수가 없어. 코로나 때문에. 가도 못 만난단 말이야.”“그게 무슨 말이야? 왜 안 오느냐고? 언제 올 거냐?”“코로나 때문에 못 간다니까. 엄마, 자꾸 왜 그래?”혜민 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자식이 보고 싶어 오라고 채근하는 어머니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치매로 말을 못
[정신의학신문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최재원, 김수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ADHD 치료법에 관해서 광고들을 보면 ‘뇌의 불균형 때문이다.’라는 얘기들이 굉장히 많아요. 뇌의 불균형 때문에 이 병이 발생하는 건가요?김수연 : 뇌는 성인이 될 때까지 지속해서 자라나고 변화를 해요. 그리고 뇌는 좌뇌, 우뇌가 원래 태어날 때, 26주 차부터 불균형을 가지면서 발달하게끔 되어 있고요. 그리고 좌뇌와 우뇌 발달 속도도 좀 다르고 두께 변화도 다르게 됩니다. 아동기부터 뒤쪽 후두엽에서부터 전두엽으로 가지치기가 되면서 피질이 얇아지는 과
[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염지연 전문의] 지난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텔레비전 드라마 는 최고 시청률을 경신한 작품답게 매회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지선우와 이태오, 이태오와 여다경, 손제혁과 고예림, 여병규와 엄효정 등 다양한 개성을 가진 부부들의 위태위태한 일면들을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만드는 전개가 일품이었다.그중 부부가 아닌 한 커플이 유독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박인규와 민현서다. 이들은 결혼하지 않은 연인 사이다. 그렇지만 보통의 연인들과 다르다. 박인규는 민현서의 삶에 빨대를 꽂고 단물을 빨아먹
[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어느 날 지하철 안에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섬뜩한 느낌을 받은 적 있다. 열차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뚫어지도록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손안에 든 스마트폰이었다. 카톡이든 유튜브든 게임이든 스마트폰 안의 신세계에 빠져 황홀경을 헤매는 사람들 같았다. 상담을 진행 중이던 어느 중학교 교사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다.“학생들이 학교에 오면 수업 시작 전에 스마트폰을 다 걷어서 보관했다가 종례 후 집에 갈 때 다시 돌려줍니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내내
[정신의학신문 : 시청역 민트 정신과, 조장원 전문의] 진료 예약이 되어 있는데도 매번 20~30분가량 일찍 와서 기다리던 환자가 있었다. 그렇게 빨리 와서 한참을 기다려 놓고는 진료실에 들어오면 오히려 상담 시간 내내 죄송하다는 말을 계속했다. 이런 것까지 여쭤봐서 죄송해요, 말이 너무 장황해서 죄송해요, 시간이 자꾸 길어져서 죄송해요, 이런 식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남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선생님, 날씨도 추운데, 종일 환자들 진료하느라 정말 힘드시죠?”몹시 춥던 어느 날, 그분은 진료실로 들어서면서 이렇게 따뜻한
[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김지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30대 초반의 직장인 지훈 씨는 꽤 괜찮은 회사에 취직된 기쁨에 한동안 잘 지냈으나, 요즘에는 업무 스트레스로 매우 힘들어하고 있다. 지훈 씨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적당하는 것을 싫어해서 열심히 일했지만, 업무 실수가 잦아 상사로부터 혼나는 일이 잦았다. 이러다 보니 회사에서 실수를 줄이려고 늘 긴장이 되었고 안절부절못할 때가 많았다. 최근에는 자신이 한 실수에 대해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키보드를 부순 적도 있으며, 이후 계속 우울해하고 있다고 하였다. 지훈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