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이 스며들면 온 세상이 휘엉청 기울어 온다. 온 장기가 바드르르 떨리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내가 두 발을 제대로 왔다갔다 하며 걷고 있나 실감하려고 하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실현해 있는 어떤 것을 보며, 들으며, 걷고 말하고 먹고 그리고 쉰다. 나에게 불안은 아주 많은 정보치를 요구하는 감정이었다. 불안할 때마다 뇌는 많은 정보를 요구했는데, 그때마다 여기저기 사이트, 외국 갤러리 사이트(초고화질의 작품사진을 무료로 볼 수 있다.)들을 둘러보곤 했다. 실물의 어떤 것을 무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특히 식물을 담은 그림은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통신과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모든 것이 밀접하게 연결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초연결 사회(Hyper-connected Society)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초연결 사회란, 사람과 사물, 공간 등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 공유, 활용할 수 있는 사회를 일컫습니다. 얼마 전 일어났던 한 메신저 서비스의 장애로 야기된 전국민적인 혼란과 불편은 우리가 이런 초연결 사회 속에 살고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케 했습니다. 메시지 전송 및 수신 불가로 인한 약속
어릴 때부터 피서를 가지 않았다. 여름이면 늘 도심 한가운데 집에 박혀 더위를 조금이라도 덜어 보겠다고 노력했다. 그 덕에 수박은 내 소울메이트였으며, 이쯤 나오는 말랑한 복숭아는 복날이면 먹는 귀한 과일이었다. 그런 나에게는 피서라는 게 무언가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움직이라는 생각을 했다. ‘더운데 왜 바깥을 돌아다니지?’ ‘가만히 집에 있는 게 가장 시원한 것 아닌가?’ 라고 말이다.그때는 여름에 집에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해, 내가 너무도 영리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조금만 지나면 가을바람이 불 텐데, 여행은 그때 가야 사람도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목자들이 들판으로 양을 치러 나갈 때는 점심때 먹을 음식들을 챙겨 갑니다. 그런데 아무 데나 놓아두거나 잘못 보관하면 어떤 짐승이 몰래 훔쳐 갈지 모릅니다. 그래서 목자마다 자신이 즐겨 이용하는 은신처가 있게 마련입니다. 나무 안에 눈에 잘 띄지 않는 큰 구멍이 나 있다면 음식을 숨겨두기에 안성맞춤이겠죠. 어느 날 목자들이 양 떼를 몰고 들판으로 나가면서 커다란 참나무에 난 구멍 안에 빵과 고기를 숨겨두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말이죠. 하지만 여우 한 마리가 몰래 숨어서 이 광경을 지켜봤
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여러분은 어떤 노래, 어떤 냄새, 어떤 장소와 조우했을 때 특별히 떠오르는 기억이 있으신가요? 누구나 특정한 장소나 사물에 노출되거나 감각이 자극받을 때 유독 기억나는 과거의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그 기억은 그때 느꼈던 감정까지 함께 소환하곤 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유독 어떤 기억은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뭘까요?우리가 경험으로부터 기억으로 저장하거나 배우는 것들을 ‘일화기억(episodic memory)’ 또는 ‘사건기억’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대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살면서 우리는 많은 확률 게임을 합니다. 1등 당첨을 통한 인생 역전과 대박을 꿈꾸며 복권을 사기도 하고, 명절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윷놀이 하며 가벼운 내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 밖에도 매일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하루에 하는 선택이 평균 150회에 달한다고 하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선택을 하며 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확률 게임에서는 성공과 실패가 중요합니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꽝이 나오거나, 청약에 당첨되거나 떨어지거나, 내기에 이기거나
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어디에나 자기를 과신하고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꼭 있습니다. 학창 시절 성적은 늘 하위권에 머물면서도 “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머리가 좋아서 마음먹고 하면 다들 깜짝 놀랄걸.” 하고 말하고 다니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아쉽게도 그런 친구들은 졸업할 때까지 끝끝내 한 번도 친구들을 놀래 준 적이 없었죠.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갔더니 비슷한 동료가 또 눈에 들어옵니다. 매번 인사고과도 좋지 않고, 승진에서 물을 먹고도 “팀장이 나한테 나쁜 감정이 있어
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태원에서 158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사건 당일 저도 연구실 학생들이 가지 않았을까 걱정했습니다. 졸업생들은 괜찮은지, 학교 전체적으로는 어떤지 신경이 쓰였습니다. 다행히 저희 학교에는 피해자가 없었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기에 안타깝고 그들의 가족, 친구, 동료들이 안쓰럽습니다.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원인을 철저히 파악하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는 자주 그래 왔듯이 비난의 대상을 찾기 위해 애를 씁니다. 스위스치즈처럼 조금씩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떤 아버지에게 두 딸이 있었습니다. 장성한 두 딸은 각각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큰딸의 남편은 원예사였습니다. 꽃을 좋아하고 식물 가꾸는 일에 취미가 있던 큰딸이 자기에게 딱 맞는 원예사를 만난 것이죠. 작은딸의 남편은 도공이었습니다. 크고 작은 그릇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살림에 재미를 붙인 작은딸은 그릇을 참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큰딸이 시집가서 잘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큰딸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래, 남편과는 사이가 좋으냐? 사는 데 별다른 어려움은
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녕하세요, 오늘은 나를 공개적으로 망신 주는 친구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주변에 사람을 은근히 공격하는 분들이 있어요. 미묘하게 비꼬는 말투, 무시하는 말투를 사용하는데, 당하시는 분들은 그때는 당황스러워 그냥 넘어가지만, 집에 와서 생각해 보면 혼란스럽고 불쾌한 감정이 생기게 되죠. 이런 사람들의 은밀한 공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애초에 계속 이러는 친구는 저는 결국엔 멀어지거든요. 그런데 늘 이러진 않고 가끔씩 이런 친구들이 있어요. 가끔씩 이런 친구들 같은 경우에는 대응이
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크게 떠진 눈, 확장된 동공, 추켜진 눈썹과 앙다문 입술. 혹시 이런 표정을 한 사람의 현재 감정 상태, 어떤 마음일지 추측 가능하신가요? 정답은 ‘공포심’입니다. 바로 ‘공포’라는 감정을 느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짓는 표정인데요, 우리는 누군가의 표정을 통해 그 사람의 현재 감정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표정은 그가 지금 몹시 화가 났다거나 슬픔에 잠겼다거나 행복한 감정 상태라는 것을, 굳이 말이라는 음성 기호를 통하지 않고서도 얼굴을 통해 드러내 줍니다. 미국의 심리
정신의학신문 | 이슬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으레 창문을 열고 그날의 날씨를 확인합니다. 날씨가 화창한지, 구름이 잔뜩 끼지는 않았는지. 대개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색을 보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지만, 잿빛 하늘을 보게 되는 날이면 내 마음도 따라 우중충해지는 듯합니다.출근을 하려고 옷장을 뒤적이다 보면, 그날 꽂히는 옷이 있기 마련입니다. 유난히 돋보이고 싶은 날에는 화려한 색상의 옷에 손이 가고, ‘제발 오늘은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말았으면.’ 하는 날에는 무채색이나 조금 어두운 계열의 옷을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연한 기회에 시골에 사는 쥐와 도시에 사는 쥐가 친구가 되었습니다. 시골 쥐가 도시 쥐에게 식사나 하자며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도시 쥐는 시골 쥐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습니다. 선물을 가지고 도시 쥐가 방문하자 시골 쥐는 친구를 데리고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자, 들판에 있는 보리와 곡식들이 다 먹을 거라네. 아무 눈치 보지 말고 실컷 먹게.” 시골 쥐는 도시 쥐에게 먹을 걸 권했습니다. 하지만 먹을 거라곤 거친 보리와 곡식들이 전부였죠. 도시 쥐는 몹시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내색할
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용서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다. _ 자크 데리다 영란 씨는 오래도록 한 사람을 많이도 미워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영란 씨의 시어머니였습니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그녀가 결혼해 시댁에 들어온 날로부터 사사건건 그녀가 하는 일에 트집을 잡으며 힘들게 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식구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온갖 집안일과 농사일을 하느라 한시도 쉴 새가 없이 고된 하루를 보내는 동안에도 틈만 나면 영란 씨를 지적하며 그녀를 들쑤시곤 했습니다.이러한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인 빌 게이츠는 ‘메모광’으로 불릴 만큼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하는 습관으로 유명합니다. 단순히 적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기록을 가지고 사색하는 시간도 갖는다고 합니다. 독서할 때도 그의 메모 습관은 계속됩니다. 그는 책 모퉁이에 소감을 메모해 뒀다가 지인들과 이를 주제로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고 하죠. 아마도 빌 게이츠의 메모 습관은 그에게 사고하는 힘을 길러 주고, 스쳐가는 아이디어를 붙잡아 현실로 만드는 노하우까지 만들어 줬을 겁니다. 이처럼 매일 반복
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매일 아침 아이의 등굣길에 마주치는 아파트 단지의 청소부 아주머니가 있습니다. 이 아주머니께서는 항상 눈길이 닿을 때마다 다정하게 웃으면서 먼저 인사를 건네주십니다. 그냥 아침에 이웃과 나누는 평범한 인사일 뿐인데, 왠지 모르게 이분과 인사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주머니의 눈은 항상 웃고 있습니다. 또 목소리는 경쾌하면서도 다정함이 묻어납니다. 이렇게 기분 좋은 인사를 나누는 일이 하루에 얼마나 있는지 곰곰 생각해 보니 안타깝게도 별로 없더군요. 그보다는 형식적인 인사가
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한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어찌하면 실수를 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스승이 제자에게 답했습니다.“자네는 실수 중에 가장 큰 실수를 하려고 하는군!” 스승과 제자 간의 이 짧은 대화에서 삶의 지혜를 전수받고 싶은 제자의 물음에 통찰력 있게 답변하는 스승의 위트가 돋보입니다. 만약 스승이 이 세상에서 실수나 잘못을 하지 않는 완벽한 인간은 없으며, 실수하지 않으려는 것 자체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난센스라는 사실을 제자에게 조목조목 설명했다면, 자칫 그 설명이 지루해지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늙고 병든 사자가 굴속에 누워 있었습니다. 젊었을 때의 용맹스러운 위용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평소 친하게 지낸 늙은 여우 한 마리가 병문안을 왔습니다. 사자가 말했습니다. “커다란 사슴의 싱싱한 내장과 심장이 먹고 싶어. 그걸 먹으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사냥을 할 수 없으니 네가 사슴을 잘 꼬드겨서 굴속으로 데려와 줘. 부탁한다.” 여우는 사자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친한 사자가 건재한 것은 자기에게도 도움이 되니까요. 숲속을 돌아다니다 멋지게 생긴 사슴을
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루비 브리지스(Ruby Bridges)는 1960년에 처음으로 백인 전용 초등학교에 입학한 6세의 흑인 여학생입니다. 루비 브리지스의 첫 등교 날에는 그녀의 등교를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습니다. 그녀는 자녀의 등교를 거부한 백인 학부모들 때문에 텅 빈 교실에서 홀로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녀의 용감하고 호기로운 이야기는 동화책과 영화로 제작되었고, 현재는 미국에서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흑인과 백인의 분리 교육이 금지된 것은 1954년이었지만, 그로부터 6년이 지난 뒤에야 흑인 아이의
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녕하세요, 오늘은 오랜 기간 함께한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넌 이후에 가슴 아파하는 견주 분들이 겪는 펫로스 증후군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오랜 시간을 반려견과 함께 보낸 견주 분들은 마치 가족 같은 반려견이 떠나간 후에 큰 슬픔과 절망감에 잠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주 분들의 마음을 애견인이 아닌 주변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더 힘들어진다고 하는데요, 최근에는 이처럼 펫로스 증후군을 호소하시면서 찾아오시는 경우가 꽤 많이 늘어났습니다. Q. 펫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