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느 깊은 계곡에 외나무다리가 있었습니다. 동물들이 좁고 가느다란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면 모두 조마조마한 마음이었습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발을 헛디디거나 외나무다리가 기우뚱하면서 아래로 떨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리 아래는 거센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떨어지는 날이면 크게 다치거나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떤 염소 한 마리가 외나무다리 근처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반대편을 쳐다봤습니다. 그쪽에 있는 풀이 훨씬 더 싱싱하고 맛있어
[정신의학신문: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살면서 우리는 누구나 힘든 순간을 경험합니다. 가족들과 다퉜을 때, 직장에서 상사에게 혼났을 때, 재정적으로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마음이 외롭고 울적할 때 등 손에 꼽기가 모자랄 정도입니다. 그럴 때면 누군가에게 내 상황과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혼자 안고 있는 짐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었으면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핸드폰 속 수많은 전화번호 목록을 아무리 훑어봐도 막상 그 누구에게도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던 날, 아마 누구나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인간관계를
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 과장은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어제와 같은 시각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회의에서의 일이 신경 쓰여 쉽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동안 이 대리와 최 부장님과 이어졌던 팽팽한 신경전과 오랫동안 묵혀 왔던 갈등 요소가 마침내 터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세 사람은 모두 성격은 물론, 업무 방식과 스타일이 너무도 달라서 김 과장이 속한 기획 2팀은 팀원 간에 늘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좋은 성과를 내기도 어려웠습니다. 김 과장은 일을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직장생활을 하는 환자분이 열심히 준비한 서류를 상사에게 가져갔더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고 합니다. “부족한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주시면 수정해 보겠습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칭찬도, 비판도 아닌 상사의 “나쁘지 않아”라는 말에 왠지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환자분은 차라리 상사가 속 시원하게 잘못을 짚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분명 숨겨진 뜻이 있는 것 같은데 의중을 짐작할 수 없는 상황은 타인과의 소통 과정에서 빈번히 발생합니다. 연인 관계에 대입하면
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평생의 사랑을 맹세하는 아름다운 약속인 ‘결혼’. 혼인 서약의 순간에는 그토록 견고해 보이던 것이, 갈등이 쌓이고 반복될수록 점차 흩어져 버리고는 합니다. 헤어짐을 예상하고 결혼을 결심하는 부부가 과연 있을까요. 예상치 못했던 장애물에 결국 무너지는 것이겠지요. 가족이 되었다가 다시 남이 되는 과정은 부부 모두에게 큰 상처로 남게 됩니다.이러한 가족의 해체가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지난해 한국의 조이혼율(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은 2.0을 기록, 전 세계 평균인 1.7보다 높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인지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인간관계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공부도, 일도 아닌 사람 사이의 관계가, 가장 어렵게 느껴집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정해진 공식 같은 게 없습니다. 물론 정답도 없고요. 상대방을 잘 안다고 생각해서 배려한다고 행동한 것이 오히려 나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올 때도 있고, 평소에 별로 호감이 없었던 직장 동료가 나에 대해 아주 좋게 평가했더라는 이야기가 뒤늦게 들려오기도 합니다. 간혹 누군가에게 전혀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선의를
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회생활의 연차가 쌓일수록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것이 소통의 기술입니다. 상대의 감정을 존중하면서 나의 의사를 명확히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소통이란 기분, 감정, 생각을 주고받는 것으로, ‘잘’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잘 표현한다’는 것은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고, 또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우리는 주로 생각보다 정서를 표현할 때 어려움을 겪습니다. 생각은 언어로 떠오르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혹은 정제의 과정을 거쳐 전달하면 됩니다. 하지만 추상적인 ‘감정’은 실
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영화 에서 정말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던 호아킨 파닉스의 작품을 찾아보던 중에 라는 제목의 영화가 눈에 띄었다. 분홍색 바탕에 호아킨의 묘하게 몽환적인 표정이 눈에 띄어 이 영화를 시청하게 되었다. 영화에서 호아킨이 연기한 테오도르는 다른 사람의 편지를 멋들어지게 대신 써 주는 대필 작가로 일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내와의 별거 중인 채로 외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게임을 해서 시간을 보내도 공허하고, 채팅 사이트에 접속해 봐도 실망만 이어 가게 된다. 그러던 중에 인
정신의학신문 | 심금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당신은 박탈감에 씁쓸하고 쓸쓸하다. 그들은 잔치에 초대받아서 즐길 대로 즐기고 양 손에 선물 가방까지 챙겨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나는 초대받지도 못했고 양 손에 가진 것은 하나도 없는 기분이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누구 하나 내가 초대받지도 선물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나는 괴롭고 고통스러운데 나의 이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이 괴로움을 누군가에게 토로하는 것이 어색하게
정신의학신문 | 심금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앞에서 내가 느끼는 박탈감의 크기는 타인에 대한 나의 우월감과 경쟁심,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나의 욕망과 노력 정도에 비례한다고 말하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재능, 외모, 부모의 경제력 등 노력 없이 주어지는 것들에 대해서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하였다. 필자가 이전에 제안한 공식대로라면 노력을 아예 한 것이 없으면, 아니 노력을 할 수 없는 부분에서는 박탈감을 거의 느끼지 않아야 하는데, 왜 우리는 박탈감을 느끼고 많은 사람들이 이로 인해서 힘들어하는 것일까?외모와 부모의 경제력, 이
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A: 내가 항상 너한테 맞춰 줬잖아!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B: 뭐? 네가 싫은 게 있었으면 그때 말을 했었어야지! 네가 아무 말도 안 해서 나는 괜찮은 줄 알았지!A: 너 만날 찌개, 국 들어간 음식 먹고 싶다고 해서 나는 별로 먹고 싶지 않은데도 같이 먹어 줬잖아!B: 너도 시키면 다 먹었고 싫다는 말도 안 했잖아! 맛있게 다 먹고 나서 지금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연인이나 친구 사이에 흔히 있을 법한 대화입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춰 주려고 항상 노력했다가 상대방
정신의학신문 |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 독이 되는 관계가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는 과정3) 독이 되는 관계에는 반드시 공범이 있다 (3) 만일 여러분이 가족, 회사, 학교 등 어떤 집단 내에서 따돌림이나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당신의 움직임이나 주장을 막는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을 독성관계의 협력자로 생각해도 좋습니다. ➀ 공동체적 가치에 대해서 강조하기가족 구성원은 가족의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가족이라는 시스템이 가족 구성원의 행복을 위한 도구
정신의학신문 | 심금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박탈감 사례 2-B: 내 노력을 왜 알아주지 않는데?경수는 원했던 대학을 졸업할 무렵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하였다. 이 대학에 수시 합격을 했을 때만 해도 이제야 원했던 삶이 열리고 세상이 내 편인 줄 알았는데……. 경수는 지방 소도시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머리도 좋고 성실해서 중고교 시절 내내 전교권 등수를 놓치지 않았고, 인강 외에 학원이나 개인과외 같은 사교육 없이도 학교 공부를 잘하는 소위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이 뛰어난 학생이었다.경수는
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쉽습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한 사람들은 먼 나라의 다른 인종의 사람들을 보면서도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 떠올라 안쓰러워 돕고 싶어집니다.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육아의 어려움에 대해, 결혼을 앞둔 사람들은 낯설고 복잡한 과정에 대해 공통된 경험이 있습니다. 나이가 달라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면 통하는 것이 생깁니다. 젊은 사장님과 노련한 경영자는 “재정 관리와 인재 관리 중에 뭐가 더 어려운 것 같나요?”라는 질문에 대해 서로 다른 답을 말하더라도
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주변을 살펴보면 유독 ‘거절’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언가 부탁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낸 뒤 상대방의 답장이 두려워 곧바로 확인하지 못하거나, 선물을 주고 나서 상대방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 하는지 수차례 확인하는 사람들이 있죠.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거절이나 거부를 당하는 상황에 처하면 극도의 불안감을 느낍니다.이를 ‘거절 민감성(rejection sensitive dysphoria)’이라고 부릅니다. 거절 민감성이 높은 사람은 실제로 거부를 당하거나, 거부를 당했다고 느낄 때,
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People don’t quit a job, they quit a boss. 사람들은 직장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상사를 떠나는 것이란 말이 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고개가 끄덕끄덕하는 모습이 벌써 눈에 보이는 듯하다. 입사와 퇴사 그 무엇도 쉬운 게 하나 없다. 입사야 자기소개서며 면접이며 준비가 복잡하겠지만, 퇴사는 그저 몸만 나오는 것뿐인데 뭐가 힘드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퇴사는 입사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괴롭다.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이미 큰 에너지가 소모되며,
2. 독이 되는 관계가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는 과정3) 독이 되는 관계에는 반드시 공범이 있다(2)정신의학신문|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째서 협력자들은 점차 주도자의 희생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폭력을 방조하는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관계의 고통은 신체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이 더 큽니다. 물론 물리적인 폭력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독이 되는 관계의 희생자가 고통받는 부분은 자신의 인생을 타인이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다는 고립감 등 정신적인 고통이 훨씬 더 큽니다. 그리고 타인
2. 독이 되는 관계가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는 과정3) 독이 되는 관계에는 반드시 공범이 있다(1)정신의학신문|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 인간이 다른 사람을 심리적으로 지배하고 자신의 문제를 상대방에게 덮어 씌우는 독이 되는 관계. 이 독성관계는 주도자와 희생자. 둘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아주 일시적인이라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이 독성이 여러분의 정신을 긴 시간에 걸쳐 바꿀만큼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사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단지 1대1의 관계라고 믿는 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부부간의
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의학과 전문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다. 한 가지 일에 너무 많은 사람이 관여하면 그 일의 해결 방안이 엉뚱한 방향으로 간다는 뜻으로 쓰인다. 직장에서의 회의 시간을 생각해 보자. 특히나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회의에서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한 배를 타고, 자기 쪽으로 노를 젓는다. 사공을 하나라도 더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입을 꾹 다물게 된다. 어차피 곧 리더 사공이 나타나 상황을 싹 정리해 줄 예정이니, 특별한 아이디어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며 말이
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의학과 전문의 은혜 씨는 요즘 직장에서 ‘은따(은근한 따돌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잡다한 업무를 은혜 씨에게 몰아 주고, 잠시 자리를 비우면 팀원들끼리 점심을 먹으러 가기 일쑤입니다. 팀의 리더 격인 제일 선배가 은혜 씨 커피만 사 오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얼굴이 붉어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니 돌아온 선배의 말은 “은혜 씨 있는 줄 몰랐네?”였지요. 더욱 속상한 점은 이 모든 게 퇴사를 통보한 뒤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이직 계획을 밝힌 날, 선배의 “배신자”라는 날카로운 말은 여전히 은혜 씨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