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의학과 전문의회의하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회의를 하느라 하루가 다 가버린 경험이 있으신가요? 회의가 잘 마무리되면 좋겠지만 모든 회의에서 좋은 결론이 도출되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오너, 팀장을 맡은 이가 말이 많다면 더욱 그렇습니다.종종 환자분들에게 끔찍한 회의는 무엇인가 질문을 했더니 ‘원래 목적을 떠나 업무에 대한 충고로 이어지는 회의’라는 공통된 의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누구를 위한 회의인지 모르겠고 시간이 아까우며 감정만 상한다는 것입니다. 꼭 업무 회의뿐만이 아니라 친구들과의 회의,
정신의학신문ㅣ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코로나로 인해 삶이 멈춰버린 건우 씨의 이야기건우씨는 진료 전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답답하다며 이야기 도중 가슴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를 만날 때마다 느껴지는 무거운 공기에는 그의 절박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났습니다. 건우씨는 해외에서 꽤 유명한 명문대를 졸업했습니다. 대학에서 만났던 친구들이나 교수님에게 항상 인정받는 학생이었던 그는 오랜 타지 생활에서 느낀 외로움 탓에 국내에서 커리어를 이어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2020년 초, 졸업 후 국내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정신의학신문|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봄의 시작을 알리는 4월.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답게 이 즈음엔 수많은 ‘시작’이 존재합니다. 첫 출근, 신입생, 새학기, 새로운 교실. 그 시작의 설렘이 가득한 곳은 단연 학교입니다. 학교생활에서 놀이는 중요한 영역입니다.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놀이를 지속합니다. 방과 후 놀이터의 풍경은 바라보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해가 어둑해지고, 엄마의 저녁식사 시간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아이들은 놀이의 종류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뛰어 다닙니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러한 ‘놀다’를 ‘재미있
정신의학신문| 이성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7)불면증 - 사랑에 빠지면 왜 잠 못 드는 밤이 많아지나?방금 집 앞에서 헤어졌는데,또 보고 싶다.잠깐만 다시 왔다 가라고 할까?아냐, 참아야만 돼.내일 일찍 출근해야 하잖아.아침에 팀장에게 보고할기획안을 집에 가지고 왔다.마지막으로 최종 점검할 생각이었다.그런데 들여다볼 짬이 나질 않는다.전화 통화 끝나자마자 SNS 시작이다.벌써 새벽 1시......기획안은 고사하고 오늘 잠은 잘 수 있으려나.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보고 싶다. 전화할까?안 돼. 내가 너무
정신의학신문| 한명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안녕하세요. 이런 곳에 글을 쓰는게 처음이라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제 가장 오래된 기억은 9살때 엄마한테 싸대기를 올려맞고 발에 밟히며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우는 기억입니다. 제가 다니는 학원이 너무 많아서 학교 친구들이랑 놀 시간이 없다보니 왕따였어요. 그러다 다가와준 친구 하나가 있어서 컴퓨터 학원을 빼먹고 같은 아파트 다른 동인 그 친구 집에서 놀기로 했는데 가기 전에 휴대폰으로 엄마한테 이렇게 문자했거든요.. 엄마 저 오늘 사실 컴퓨터 학원 안가고 00이 집에서
1. 상처투성이였던 그 시절의 나에게 우리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2)정신의학신문|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신이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 믿었던 청년이 앞으로 자신을 바꾸려면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관계를 내면화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잘못해도 주먹이 날아오는 대신 타이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관계. 혹은 굳이 그런 이상적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보통 사람들이 늘 당연하듯이 겪어왔던 보통의 관계만 유지해도 나쁜 관계로 인해 망가졌던 마음은 조금씩 변하기
이호선의 (15) 우리에겐 정말 대화가 필요해- 소통 가족과 불통 가족의 차이 [정신의학신문: 서대문 봄 정신건강의학과 이호선 정신과 전문의]2022년 1월부터 2월까지 서울 정동극장에서 막을 올렸던 연극 한 편이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제목은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이다. 구성원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대단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 크리스토퍼는 언어에 집착하는 학술 비평가이고, 어머니 베스는 추리소설 작가이며, 형 다니엘은 언어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고, 누나 루스는 오페라 가수 지망생이다. 반면 막내
“나이가 들면 저절로 좋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아이가 ADHD로 진단받은 뒤 보호자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고민을 하게 되죠. 특히 ADHD라는 것이 눈에 보이게 아픈 질환도 아니고, 나이가 많아지면 ‘과잉행동과 충동성’이라는 두드러지는 증상은 점점 호전되는 경우가 많아서 부모님들은 이대로 기다려주면 아이가 ‘스스로 이겨내고 저절로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하지만 ADHD의 경과를 연구한 결과, 나이가 많아지면 ‘뇌의 발달은 이루어지더라도’ ‘반드시 경과가 좋아지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1. 상처투성이였던 그 시절의 나에게우리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1)정신의학신문|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여기 두 명의 청년이 있습니다. 첫번째 청년은 화목한 집에서 관대한 부모님께 사랑받으며 자랐죠. 이 청년의 부모님은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너는 소중한 사람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청년이 뭔가 잘못한 일이 있었을 때도 꾸중을 할지언정 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을만한 존재라는 점을 계속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었죠. 반면에, 다른 두번째 청년은 불우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는 자신의 인
[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현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저는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진료를 보러 오셨다가, 성인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ADHD로 진단된 분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차 키를 어디에다 뒀는지 매번 까먹어서, 그걸 찾느라 출근 시간을 한참 잡아먹어요.”“아내가 집에 올 때 뭘 사 오라고 했는데, 깜빡 잊어버렸어요.”“직장에서 새로운 기계 작동법을 배웠는데, 막상 써보려니 어떻게 하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나서, 여러 번 천천히 얘기해 달라고 했어요.”위의 예는 각각 장기기억,
[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최재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성인기에 처음으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ADHD로 진단되는 경우, 처음부터 ADHD 증상을 주문제로 내원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개 우울, 충동 조절의 어려움, 불안 등의 증상이 심해서 내원했다가 ADHD도 함께 진단되는 경우가 더 흔하다. 대체로 성인 ADHD에서 다른 진단이 동반되는 경우가 약 80%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참조: 성인ADHD의 동반질환] 성인 ADHD에서 흔히 동반되는 진단들에 대해 살펴보자. 1) 주요우울장애 Major Depressi
[정신의학신문 : 장기중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노벨상 문학상을 수상한 앨리스 먼로의 단편 소설 '곰이 산을 넘어오다 (The bear came over the mountain)'는 치매에 걸린 아내라는 상황을 통해 기억과 사랑에 대한 담론을 우리에게 던진다. 대학교수였던 남편 그랜트와 그의 아내 피오나는 50년을 함께 한 부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랜트는 온 집안 여기저기서 아내가 적은 '식기, 행주, 칼'같은 기억을 상기시키기 위한 메모들을 발견한다. 피오나의 기억력 문제는 악화됐고 점점 그녀 답지 않은 의외의 행동을 보였다
[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김인수 전문의] 잠을 자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사람은 평균적으로 인생의 1/3을 자는 데 소비한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2019년 기준으로 83.3세(통계청 자료)인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무려 28년가량을 침대 위에서 보내는 셈이다. 만약, 수면의학이 발달하여 잠을 자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당신에게 추가로 28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아마도 인생을 계획하고 살아가는 방식이 매우 달라질 것이다. 인류가 잠을 잘 필요가 없어진다면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
[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UNIST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요즘 다양한 괴롭힘 관련 폭로 소식이 들려옵니다. 운동선수에서 연예인으로 번진 학교폭력이나 간호사의 직장 내 괴롭힘 뉴스가 대표적입니다. 영국 왕실에서 태어날 아기의 피부색을 언급하며 차별을 받았다는 인터뷰를 수천만 명이 시청했습니다. 코로나 영웅으로 인기 높던 미국의 주지사가 연이은 성희롱 폭로로 수사 대상이 됩니다. 위 사건들처럼 서로 아는 사이로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상황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한 번의 만남에서도 큰 상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제
[정신의학신문 : 나종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여느 때처럼 할아버지는 긴 산발의 머리를 하고, 야구 모자를 쓴 채, 환자 대기실에서 앉아있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일어나며 주섬주섬 옆 자리에 놓아두었던 비닐봉지를 훔쳐 담았다. 그리곤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젊은 시절 잠시 아편계 진통제를 남용한 적 있었지만, 수십 년간 약물을 끊고 살아온 할아버지는, 3년 전, 다시 헤로인 (아편계 마약류)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가 성심성의껏 간호를 해 주던, 수십 년간 동고동락한 아내가 오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최재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씨. 말씀하신 우울, 무기력, 대인관계의 어려움, 집중의 어려움 등의 증상은 면담 및 검사 결과 우울증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ADHD 때문으로 판단됩니다. 앞으로 열심히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으셔야겠습니다.”“네. 선생님. 그런데요, 혹시 정신과 약을 먹다가 중독되지는 않을까요?” 중독에 대한 걱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일해 오면서, 이처럼 약물치료에 대해 권유했을 때 정신과 약을 먹으면 중독될까 봐 걱정된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이 사
[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김인수 전문의] 1. 수면 공학수면에 대한 연구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아직도 우리가 왜 자는지, 자는 동안 우리의 뇌에서 정확히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사람에 따라 수면을 커스텀화 시켜 보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수면공학” 이 용어는 영국 카디프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Penny Lewis가 처음 사용하였는데, 현재 이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수면공학이란 '수면 + 공학'의 합성어로, 수면 도중 외부적 자극을
[정신의학신문 : 삼성 마음숲 정신과, 김재옥 전문의] 사연)제가 어떤 기분인지를 모르겠어요. '좋았다', '안 좋았다' 정도로는 표현할 수 있는데 그밖에 감정들은 제가 느껴봤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그래도 책을 많이 읽어서 어떤 감정들이 있는 줄은 아니까 다른 사람이 어떤 기분이겠다 라는 생각은 되는데 제가 어떤 기분인지는 바로바로 말로 표현이 안 돼요.예를 들면 주변에서 제가 우울해 보인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살면서 제가 우울하다는 워딩을 하면서 감정을 느낀 적은 없어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갑자
나에겐 매일이 식목일이다. 매일 아침 식물 물 시중을 들고, 아침·저녁으로 환기를 시킨다. 봄에는 바깥으로 좇아 내고,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하나 둘 집안으로 들인다. 그렇게 식물 하나하나를 알아가도 모르고 또 모른다. 모르겠는 그 마음을 헤아려가며,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나에게 힘이 되는 식물을 지켜보며 내가 받은 수많은 위로의 날들을 글로 풀어보려 한다. 정말이지 매일 죽고만 싶지만, 그런 내 두 손엔 식물이 올라서서 매일 조금씩 변화한다. 죽어가던 나의 마음과 식물이 만나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날들을 돌이켜본다. * 매주 2회
[정신의학신문 : 민트 정신과, 조장원 전문의]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아.’이 팀장은 요즘 고민이 많다. 회사 일에 통 의욕이 생기지 않아서다. 작년에 팀장으로 승진하면서 맡게 된 새로운 부서 일이 여간해서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예전에는 일이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매달린 적도 있었고, 성취감도 많이 맛봤으며, 팀원들과 격의 없이 의기투합하며 지내기도 했는데, 지금 부서에서는 그런 걸 전혀 느낄 수 없다. 습관적으로 출근하고 정해진 대로 일하다가 시간이 되면 퇴근하기 바쁘다. 팀장으로서 팀원들을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