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연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치료야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어린이집을 포기하고 와야 한다는 뜻인가요? 정상 발달 아동들과의 생활도 중요한 것 같은데요.”네 맞습니다. 어린이집과 같은 통합 환경은, 자폐스펙트럼 아동들의 발달에 분명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상발달 아동과의 만남에서 기대되는 효과적인 상호작용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들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야 합니다. 이 "어느 정도의 사회기술을 갖추는 것"에는 보통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요.삶에 있어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협상을 할 때 많이 쓰이는 방법 중에 ‘문 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이라는 것이 있다. 작은 요구부터 시작해서 큰 요구까지 하라는 방법이다. 대표적인 실험은 다음과 같다. A 그룹과 B 그룹을 나누어서 A 그룹에는 작은 조치를 취하였고, B 그룹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A 그룹에 한 작은 조치는 한 아이가 집 앞에 찾아가서 안전운전 캠페인에 대한 서명을 받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쁜 일도 아니고, 서명을 하는 것이 그리 큰 에너지가 드는 일이 아니기에(작은 요구) 캠
[정신의학신문 :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 전문의] 강박증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작은 실험 하나를 해보자. 간단하다. 눈을 감고 핑크색 코끼리를 떠올려보는 거다. 본 적이 없다고? 그럼, 그냥 코끼리의 모습에 핑크색을 덧씌워보자. 10 초간 코끼리의 이미지를 충분히 떠올렸으면, 이번에는 핑크빛 코끼리의 모습을 전혀 떠올리지 않도록 해보자. 어떤가? 분명 코끼리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핑크빛 코끼리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그리고 자주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마음에서 빚어내는 생각
그릇이 커야 한다. 그릇이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어릴 때 이런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태어나기를 섬세하고 예민하게 태어났기에 사소한 일, 작은 일 하나하나에도 전전긍긍하고 여러 번 반복해서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 내가 자주 들었던, 아니 들어야만 했던 말이 바로 ‘그릇이 커야’ 한다는 것이다.문장도 유행을 타는 것인지 요즘은 예전만큼 저 표현을 자주 쓰는 것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사람의 됨됨이 또는 품격 등을 논할 때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그릇이 크다는 말처럼 아리송한 말도 또 없다. 나는 ‘그릇이 크다
[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편집자로부터 6월호의 전체 주제가 ‘신뢰’이기 때문에 ‘거짓말’에 대한 칼럼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사회에 가짜뉴스가 늘고,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니 거짓말을 판별해주는 원리나 기계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정신과 의사는 속은 것 같다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만약 경찰에서 쓰는 거짓말탐지기를 일상 대화에 사용할 수 있으면 거짓말로부터 받는 상처를 예방할 수 있을까요?거짓말탐지기의 원리는 거짓말을 하는 동
[정신의학신문 : 구로 연세 봄 정신과, 박종석 전문의] 도박을 다룬 영화나 만화에서 자주 언급되는 대사가 있다. “도박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야. 타짜가 되거나 재벌이 되거나.” 타짜가 되면 도박이 아니라 직업이 되고, 재벌이 되면 돈을 웬만큼 잃는다고 해도 불행해질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주식에 적용하면 어떨까?고수가 되거나 재벌이 될 수 있을까? 초보인 우리들에겐 둘 다 어렵고 요원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치료를 받아야만 한다. 중독 치료의 기본 원리는 내성과 금단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다.내성이란 동일한
[정신의학신문 : 대한불안의학회 이상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공황장애 및 공황발작은 익숙한 병명이면서도, 발생 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질 것이다. 수학이란 문제 해석을 통한 핵심과 풀이 방법을 알아야 풀 수 있듯이, 공황 또한 어떻게 일어나며 어떠한 방법을 써야 하는지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다. 공황이 찾아왔을 때공황발작이 일어나면 응급실에 가야 한다. 하지만 응급실에 가지 못하거나 도착하기 전까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다. 한 번이라도 공황발작을 경험해보았거나 진단을 받았다면, 공황은 죽는 병이 아
[정신의학신문 : 신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번 글에서는 다른 질병들과는 대조되는 정신질환의 속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제목 그대로 정신질환은 환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병으로 취급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질병에 해당하는 증상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사회 도처에서 생활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정신과에서 질병으로 진단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그 질병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초래되어야 한다. 그런데, 다음과
[정신의학신문 : 서원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20년 한 해의 가장 큰 화두는 COVID-19라는 데 대부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 전대미문의 감염병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미친 영향력은 막대했다. 2019년 12월이었나 20년 1월이었나, 우한에서 폐렴이 돌고 있단 기사를 처음 봤을 때에만 해도 ‘그래 봤자 폐렴인데 무슨 호들갑인가? 혹시 이 폐렴이 SARS나 MERS처럼 될까?’ 라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나의 생각을 비웃듯 2월 말 대구에서 확진자가 퍼지더니 3~4월을 거치며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어 버
[정신의학신문 : 제주 슬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오동훈 전문의] “현재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먹고 있는데 코로나 백신 맞아도 되나요?”여느 때처럼 한 환자분 진료를 마치고, 다음 진료를 막 시작하고 있었는데, 접수처 담당 직원에게서 온 메시지 하나가 진료실 컴퓨터 화면에 떴습니다. "진료 마치신 OOO님이 문의할 것이 있다고 하시면서, 원장님 다시 만나 뵙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무슨 일이실까?" 진료를 마무리하고, 그분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분은 다소 염려 어린 말투로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여기 약을 먹고 있는데 코로나 백신 맞아
[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둘은 이름이 비슷한 까닭에 혼동되곤 하지만 사실은 많이 다릅니다. 설명을 하기 전에, 먼저 증례를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28세의 남성 A씨는 6개월 전부터 출근 전에 가스 밸브를 여러 차례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가스 밸브를 잠그고 나왔지만 문을 닫고 나면 마음속에서 불안감이 올라옵니다. 딱 한 번만 더, 하고 다짐하며 문을 열고 들어가 잠긴 밸브를 확인하지만 안도감은 잠시뿐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증상은 점점 심해져, 스무 번도 넘게 문을 여닫으며 가스 밸브를 거듭 확인해야
'라라랜드'를 좋아한다. 사실 이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냐만, 내가 '라라랜드'를 좋아하게 된 지는 별로 오래되지 않았다. 2021년 들어서야 처음 본 영화였으니까. 그전에는 '라라랜드'를 볼 기회가 없었다.워낙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영화라서 내가 '라라랜드'를 안 봤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 좋은 영화를 왜 아직 안 봤냐고 하며 꼭 보라고 했다. 반골 기질인지 뭔지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극찬을 하니 왠지 모르게 더 보기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마 나는 '라라랜드'를 봐도 싫어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나는 뮤지컬
[정신의학신문 : 정연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운드 북, 불빛 나는 장난감 다 치워야 하나요?아이의 느린 발달로 고민하시는 부모님들로부터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위 질문에 간단하게 답변드리자면, “당연히 치우시는 것이 좋긴 합니다.”그런데 왜? 치워야 하는 것인지, 알고 치우시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하루 종일 사운드북만 누르고 있어요.”감각추구는 자폐스펙트럼 아동의 흔한 특성 중 하나입니다. 소리나 빛과 같은 감각에 대한 호불호가 매우 명확하며, 호감 가는 자극에 대해서는 전환이 불가능할 정도로 몰두합니다. 이와 같이 감각
[정신의학신문 : 마인드랩 공간 정신과, 이광민 의학박사] 이번 주제는 ‘수면’입니다. 아마 이 주제가 반가운 분이 있으실 겁니다. 애타게 잠을 원하는 분도 있으시고 어떤 분은 자려고만 하면 괴로운 생각부터 떠오르죠. 자려고 노력하는데도 잠이 오지 않아 고생인 분들께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누구나 일생에 한 번 이상은 불면증을 경험합니다. 통계적으로는 전 인구의 30% 정도가 잠을 잘 자지 못한다고 하죠. 그중에서 약물치료를 해야 할 정도로 병적인 수준의 불면증이 있는 분들은 30%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진단명 중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중에 적응장애가 있습니다. 시험에 떨어지거나 연인과 헤어지는 등 스트레스 사건 이후에 정서나 행동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런데 만약 증상의 정도가 우울증 진단기준을 만족할 정도면 적응장애가 아닌 우울증으로 진단명을 붙입니다. 불안장애나 알코올중독에 해당이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적응장애가 아닌 해당 진단명을 붙이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우울증 클리닉, 공황장애 클리닉과 유사하게 적응장애 클
[정신의학신문 :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족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이지요.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면 가족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함께 하고, 우리가 죽을 때까지 인연을 이어나가요. 가족은 혈연으로 이어져 있고 나와 가장 닮은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들을 가깝게 느끼고, 서로를 도와주고, 또한 어려운 일이 있으면 힘을 합쳐서 이겨내기도 해요.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 찾아오는 상당수의 환자분들 역시 사연자분처럼 가족 간의 문제로 찾아오시는 분들이에요. 너무나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보통의 관
[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정정엽 전문의] 나가이 아키라 감독의 은 제목만 보면 꽤 귀엽게 느껴진다. 정말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되려나, 하는 궁금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여느 드라마 장르에서 기대하는 흥미롭고 잔잔한 킬링타임용 인간 서사와는 조금 다르다.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듯한 가면 너머,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주인공은 서른 살의 우편배달부이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그날, 주인공 앞에 주인공과 똑같은 모습을 한 악마가 찾아온다.
[정신의학신문 : 대한불안의학회 이상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공황은 현대에 갑자기 생겨난 질환이 아니며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연구해 나가야 할 과제이다. 사회적 분위기가 변화하면서 공황장애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처럼, 질병이란 새로운 시대와 사회를 맞이하면서 다른 증상과 더불어 새롭게 발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황은 무엇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이는 공황이 지닌 확장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공황발작과 신체 질환과의 연관성공황장애 진단을 의사에게 받아야 하는 이유는 공황발작이 신체 질환과 연관이 많기
[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정정엽 전문의] ‘교회는 성경. 불교는 불경. 배구는 김연경’세계적인 배구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김연경 선수가 본인의 SNS에 직접 작성한 글이다. 스스로 배구의 경전으로 칭하는 자신감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김연경의 자신감 섞인 유머에 사람들도 동의를 표하며 즐거워한다.‘저처럼 되는 건 쉽지가 않죠. 제가 잘하긴 하니까요.’, ‘많이들 저와 함께 뛰고 싶다고 하는데 그건 그 사람들 생각이고, 저의 생각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잘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등등 이미 지난 인터뷰에서 한 말
'굿 윌 헌팅'은 '라라랜드' 못지않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 교수가 ‘윌 헌팅(맷 데이먼)’을 따뜻하게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장면을 많이 떠올린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주인공 윌 헌팅이 스카일라(미니 드라이버)를 만나게 되는 부분이다. 정확히는 스카일라를 만나기 직전 장면이다.윌 헌팅과 그의 친구들은 어느 날 하버드 대학교 근처의 술집으로 놀러간다. 윌 헌팅의 친구 중 하나인 처키 슐리반(벤 에플렉)이 먼저 스카일라와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