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부산서면 통통샤인정신과 이상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시인 윤동주는 ‘서시’에서 라고 노래했다. 그는 해방을 앞두고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의 마루타가 되어 비참하게 죽어갔지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는 삶의 태도는 죽어 있는 우리의 감성을 여전히 일깨워주고 있다. 삶의 문제에 좀 더 유연하게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학교 다닐 때 시험기간마다 내 가방은 참 무거웠다. 막상 공부할 때는 우등생 동기들이 십시일반 만들어 준 요약본(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참 아름다운 문화였다.)도 겨우 봤지만, 집에서 책을 챙길 때는 강의록을 비롯해 한 해 동안 몇 번 열어보지도 않을 전공서적까지 바리바리 가방에 넣었기 때문이다.길면 3~4주, 많을 땐 1~2주 단위로 시험을 봤던 본과 시절에는 맘 편히 친구들과 놀러 갈 기회도 몇 없었다. 특히 다른 공부를 하는 친구들과 펜션에서 고기라도 구울라치면 대개는 여행 날짜와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점심 메뉴 선정은 언제나 힘들다. 제육을 먹자니 돈가스가 끌리고, 돈가스 집을 가려니 짬뽕이 눈에 아른거린다. 아직 남은 회식자리의 술기운을 지우자는 합리적인 이유 하나를 겨우 찾아 중국집으로 향한다.메뉴판은 또 다른 시련이다. 오로지 짬뽕만을 떠올리며 자신 있게 자리에 앉았는데, 옆자리에서 면치기를 시전하며 간짜장을 흡입 중이다. 불현듯 양파의 식감과 라드에 구운, 흰자가 조금 바삭한 계란 후라이의 고소함이 땡긴다. 해장에 무슨 짜장이야, 자신 있게 짬뽕을 시키려 했던 마음은 온데간
[정신의학신문 : 이상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죽음에 가까이 갈수록 드러나는 일상의 소중한 가치를 주목하라.그룹 N.EX.T의 신해철은 노래를 통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그대여’라고 고뇌에 찬 질문을 던진다.나는 인생의 끝나는 시점에 지나간 세월에 후회는 없었다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얼마 전, 오랜만에 친구가 전화가 왔다. 자정이 넘은 시간, 2차 회식 자리를 파하는 중이라고 했다. 결혼식 사회를 맡겼을 정도로 듬직하고, 평소 자기 고민보다는 남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친구. 이 시간에, 이렇게 취해서 연락하는 건 꽤나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다는 거다.“알지? 나 3년 만에 겨우 취직한 거. 다른 애들은 회사 잘 다닐 때 혼자 공부하느라 힘들어서 취직만 되면 아무 걱정 없겠다 싶더니, 막상 취업하니까 오만 걱정이 다 드네. 이 일 계속할 수 있을까 싶고, 언
[정신의학신문 : 이상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노랫말 중에서 ‘개에게 물렸을 때, 벌에게 쏘였을 때, 자꾸만 슬퍼질 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면 기분이 조금 나아져요.’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힘들 때 내가 좋아하는 기억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고 안정감을 얻는 경험은 어린 시절 엄마란 애착대상으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누구에게나 행복했던 기억은 있습니다. 뿌듯한 감정을 느꼈던 일과 성취경험은 의미 있는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습니다.슬럼프 상황에서는 현재의 절망적인 상황에 집중하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참 일이 힘들 때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매운 떡볶이에 소시지와 치즈를 토핑해 먹고, 세계맥주를 마시며 편의점 닭다리를 뜯었다. 밤마다 인턴 동기들과 숙소에서 피자며 치킨을 먹었고 룸메이트와 중국집에서 1인 1요리를 시켰다. 식비는 꽤 부담이었으나 바빠서 다른 데 돈을 쓸 만한 시간이 없어서 괜찮았다.즐기던 운동들은 바빠서 그만두고 식사가 느니 급격히 몸이 불었다. 외모나 몸매 따위를 신경 쓰는 건 사치였다. 문제는 체력이었는데, 나이 탓도 있겠지만 예전에 비해 빠르게 지치고
[정신의학신문 :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옷차림이 얇아지고 메이크업도 가벼워지는 계절이 다가왔다. 다이어트의 시즌도 덩달아 찾아왔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장착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자기 외 다른 곳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무민라이프,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상관없이 내가 행복해야 한다는 욜로라이프 등 나에게 집중하는 전반적인 라이프 트렌드가 휩쓸고 있는 가운데 ‘자기 확신’이라는 키워드가 예전보다 더욱 필요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다른 사람들의 보편적인 기준에 얽매였다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은 어미 고양이다. 얼마 전 새끼 고양이 다섯 남매를 낳았다. 솜뭉치들이 야옹거리며 서로 엉켜 꼬물거리는 모습을 보는 당신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그런데 다섯 번째 막내 아이가 유독 모자라다. 마당에서 잘 뛰놀다가도 혼자 사라지기 일쑤고, 밥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다른 남매들에게 치여 밥조차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운동능력이 부족해 구덩이에 빠지거나 오른 나무에서 내려오질 못하는 등, 자꾸만 사고를 친다.오늘은 해가 져도 돌아오지 않는 막내 녀석, 불안해진 당신
저는 아마도 오랫동안 우울증을 겪고 있었던 것 같아요.아무에게도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요.사실은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것에 한계가 오고 있었나 봐요. 불안함도 우울함도 스트레스도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늘 불안 속에 살고 있었어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요. 그러다가 결국 어느 날, 몇 년 동안이나 생각만으로 해오던 일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어요.평범하고 맑고 추운 가을날이었요. 후드티 한 장만 걸친 채로 집을 나와 아무 생각 없이 서울 가는 버스를 탔죠. 버스 창 밖으로 반짝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저는 태어날 때부터 불행할 운명이었어요.”젊은 친구가 눈물을 왈칵 쏟는다.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함부로 꺼내기도 미안할 정도로, 힘겨웠던 삶의 여정을 앞서 몇 번의 면담을 통해 이야기한 후였다. 듣는 입장에서도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너무나 공감이 가고, 안타까웠다.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면담실을 방문하여 이야기와 울음을 한참 토해내니 감정은 꽤 진정되었지만, 이야기의 내용은 큰 변화가 없었다. ‘삶이 이렇게나 힘들었고, 그래서 저는 불행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에요.’ “진심으로 그
[정신의학신문: 이상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남아있는 자존감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먼저, 자아이미지를 점검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아이미지는 자기자신을 떠올리며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으로 일단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빈 종이에 반을 접어서 왼쪽에 자신의 장점을 적어보시고, 오른쪽에 자신의 단점을 적어보세요. 무엇을 적을까 생각이 나지 않아 가슴이 답답하십니까? 자기가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이 대략적으로 어떤지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장점에 대해 비판적으로 대하지 말고,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십시오. 장점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미루기를 논하기에 앞서 웃픈 이야기를 할까 한다. 중요한 일을 나중으로 미루는 습관에 대해 많은 환자분,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언젠가는 꼭 글로 그때 오고 간 이야기를 정리하고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글 자체가 수많은 미루기와 미루기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실은, 여태껏 썼던 모든 글이 마찬가지였다. 글뿐 아니라 어쩌면, 살아가며 이룬 작은 성취들 모두가 끊임없는 미루기와의 줄다리기였음을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고백한다. 수동 공격적 성격(Passive a
[정신의학신문 : 건대하늘 정신과 최명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19년 3월 20일 발표된 ‘2019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 156개국 중 54번째로 행복한 나라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장 행복한 국가는 핀란드였고,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가 뒤를 이었습니다.2012년부터 매년 발표해온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은 대체로 50위권이었습니다. 2018년 한국 GDP 순위는 12위로, 경제적 위치와 행복의 순위는 다소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한편으로 우리나라가 13년 동안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학생 때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다. 가난하고 어린 마음에 하루 경비를 지나치게 낮춰 잡았었다. 두 끼 밥값이 어려운 돈으로 배도 타고 미술관도 보다 보니 당연히 돈이 모자랐다. 여행 시작 3주가량 즈음부터 경비가 떨어져 밥 먹을 돈이 없었다. 2 유로짜리 가방만한 식빵을 사고 배고플 때마다 조금씩 뜯어 누텔라 초코잼을 발라먹으며 로마 시내를 돌아다녔다.그렇게 버티는 게 가능했던 이유는 다행히도 당시 묵던 한인 민박에서 자율배식 저녁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빵 몇 조각으로 견디며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예전에 KBS ⌜대화의 희열 – 아이유 편⌟에서 다니엘 린데만이 패널로 나와 자신의 인생곡으로 마이클 잭슨의 ⌜맨 인 더 미러⌟를 뽑았었습니다. 다니엘 린데만은 ⌜맨 인 더 미러⌟라는 곡 가사에 인생의 모든 진리가 다 담겨 있다며 추천을 하더라고요.그런데 짧게 흘러간 그 가사에서 저도 다니엘 린데만의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가 느껴지더라고요. 물론, 예술이라는 것이 각자에게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회적 위계에 의한 가혹행위, 갑질에 대한 기사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온다. 그 정도가 과함을 넘어 엽기적인 수준의 일들도 많다. 뉴스에 나올 정도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사회에서 만나 일상적으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분명 혼자 살 수는 없는데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니 제명에 못 죽을 것 같다.납득하기 힘든 의사결정을 견디고 인신공격과 경계가 모호한 질책을 참아내다 보면 사람이 같은 사람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때도 있다. 자기 가족에게라면 똑같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당연히 가
[정신의학신문 :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철은 차가운 새벽 공기를 뚫고 달립니다. 당장 뛰어내리고픈 충동과 가슴의 답답함을 애써 누른 채 나는 어제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지친 몸을 차가운 금속 벽에 기댑니다. 가슴이 언제 마지막으로 뛰었는지 모르겠어요.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 삶을 사랑하기도 했었고요. 예전의 나는 눈을 반짝이며 슈퍼맨 같은 아버지의 등 너머를 궁금해했었죠. 반에서 가장 힘센 아이의 무지막지한 주먹도 선생님의 회초리조차도 내 발걸음을 막지 못했죠.하지만 지금 나는 달리는 네모난 상자 안에 있습니다.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누가 했는지 모르겠지만 참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던, 기가 막힌 명언이다. 각자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는 깨닫는다. 항상 비슷한 것을 욕망했었고, 반복되는 같은 이유들로 아파했다는 것을.새로운 연인에게 우리는 마치 다시 태어난 사람이 된 듯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이전에 만났던 상대와 싸울 때처럼 다투고 이전 이별을 반복하듯 비슷한 모습으로 헤어진다. 선배의 비위를 잘 맞추지 못하던 학생은 취직해서도 상사를 모시는 데 애를 먹고, 후배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치보다 현실이 앞서는 시대다. 소설가 김영하는 현실이 힘겨운 작가 지망생이 어떻게 하면 소설가가 될 수 있냐고 물으면 ‘작가 하지 말라.’는 답변을 한다고 했다. 본인이 대학 다닐 땐 매년 경제 성장률이 두 자릿수 이상, 지금의 4~5배였고 적어도 먹고 살 걱정은 없었으며, 무엇을 해도 나아질 것 같은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아버지도 직장을 계속 다니고 있었으며,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취업을 할 수 있었던 시기였단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학자금 대출이 있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