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햇병아리 정신과 전공의 시절, 주변에서 의사라고 하면 무슨 과를 하냐고 물어보곤 했다. 어느 분의 대답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정신과를 하세요? 아니, 그 정신 나간 사람들이 뭐가 좋다고.’주변의 반응에 씁쓸했었다.이십 년이 지난 지금은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해마다 정신과약물은 새로운 이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약물의 효과도 뛰어나다. 하지만, 여전히 똑같은 질문을 듣는다."원장님 자녀라도 꼭 이 약을 먹이겠습니까?"이 질문에 햇병아리 시절에는 큰 목소리로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은 어미 고양이다. 얼마 전 새끼 고양이 다섯 남매를 낳았다. 솜뭉치들이 야옹거리며 서로 엉켜 꼬물거리는 모습을 보는 당신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그런데 다섯 번째 막내 아이가 유독 모자라다. 마당에서 잘 뛰놀다가도 혼자 사라지기 일쑤고, 밥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다른 남매들에게 치여 밥조차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운동능력이 부족해 구덩이에 빠지거나 오른 나무에서 내려오질 못하는 등, 자꾸만 사고를 친다.오늘은 해가 져도 돌아오지 않는 막내 녀석, 불안해진 당신
[정신의학신문 : 건대하늘 정신과 최명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고 막대한 권력을 쥐었던 진시황이 그렇게 가지고 싶었지만 결국 구하지 못했던 것은 장수의 비결이었습니다. 진시황은 영원히 살고 싶은 마음에 서복이라는 인물에게 불로초를 구하라고 명하였지만, 바다로 떠난 서복은 중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진시황은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과 50세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꼭 진시황이 아니더라도 늙지 않고 오랫동안 건강하고 살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 중 하나일 것입니다. 현대에도 노화를 막기
[정신의학신문 :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히어로를 소재로 한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소아나 청소년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성인들 또한 히어로 영화에 열광하고, 마트에서는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값비싼 히어로 관련 상품이 넘쳐납니다.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로부터 20세기의 슈퍼맨까지 동서고금의 많은 이야기 속 영웅들은 책 속에서, 이야기 속에서 살아 숨 쉬며 인간들을 매혹시켜왔죠. 이들은 인간을 뛰어넘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거대한 숙명과 악당에 맞섭니다.하지만 우리는
[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연) 60대 초반 환자이고, 조현정동장애 소견으로 3차병원에서도 조현병이 의심되며 폐쇄병동입원치료를 권유받았습니다. 환자는 병식이 없고 자기는 괜찮다며 부정하고 있습니다. 환자는 중얼거림 외에는 생활하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으며 폭력적인 성향이나 우울감 및 자해시도가 전혀 없어 보입니다.폐쇄병동에 입원시 환자본인보다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 다른 환자들을 보고 쇼크 받거나 자존심이 센 성격에 가슴에 상처로 남아 치료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강제입원 폐쇄병동입원시 환자가
[정신의학신문 :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이혼 소송 중이고 배우자 측에서 아이 키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혼 소송을 시작한 지 벌써 7개월이 지났습니다.아이와 주기적으로 면접은 하고 있지만, 평소에도 같이 살 때처럼 아이와 전화나 문자 등 연락을 자주 하고 싶은데 아이의 태도에도 점차 변화가 오는 게 느껴집니다. 처음엔 배우자와 그 가족들의 눈치 때문에 전화 통화하는 것조차 눈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노력하면 괜찮아지리라 생각했지요.하지만 남자아이이고, 저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점
[정신의학신문 :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얼마 전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박한이 선수가 다음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며 접촉 사고를 냈고 음주단속에 걸렸습니다. 삼성구단뿐 아니라 프로야구 전체의 레전드였던 그는 곧바로 은퇴를 발표했습니다. 보장된 미래와 영광, 지도자의 길, 모든 것이 불투명해지고 말았지요.박한이뿐만 아니라 과거 다른 야구선수나 유명 연예인들의 끊임없는 음주사고가 매번 발생해왔습니다. 대리기사를 부를 돈이 없었을 리도 없고, 적발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재발하는 이유는 대체
지난주 영국에서는 '대학원생의 정신건강'에 대한 사상 최초의 국제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학계의 위기를 해결하려면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주 영국 브라이튼에서는 「대학원생 연구자의 정신건강과 웰빙에 대한 1차 국제회의(the First International Conference on the Mental Health & Wellbeing of Postgraduate Researchers)」가 열렸다. 이틀 동안 열린 회의의 목적은 '간단하고 시급한 진실'을 밝히는 것
저는 아마도 오랫동안 우울증을 겪고 있었던 것 같아요.아무에게도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요.사실은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것에 한계가 오고 있었나 봐요. 불안함도 우울함도 스트레스도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늘 불안 속에 살고 있었어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요. 그러다가 결국 어느 날, 몇 년 동안이나 생각만으로 해오던 일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어요.평범하고 맑고 추운 가을날이었요. 후드티 한 장만 걸친 채로 집을 나와 아무 생각 없이 서울 가는 버스를 탔죠. 버스 창 밖으로 반짝
[정신의학신문 : 사랑샘터 정신과, 김태훈 전문의] 정신과 진료를 하다 보면 가장 흔하게 접하는 정신과 질환 중에서 공황 장애가 있다. 공황 장애는 갑작스럽게 심한 불안발작과 아무런 예고 없이 다양한 신체증상들이 나타나는 불안장애 중 하나이다. 공황장애에서 공황은 갑작스럽게 생기는 심리적 불안상태를 말한다.공황이란 단어가 쉽게 와 닿지 않을 수 있는데, 1929년 10월 미국 주식의 갑작스러운 폭락을 대공황이라고 일컫는다. 이때 당시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주가가 폭락하는 '파탄'(the Crash)으로 이어졌다. 주식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본 글 중간에 ⌜엑스마키나⌟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9년 5월 24일–5월 25일 이틀에 걸쳐 ⌜The social agent : perspectives from cognitive science⌟라는 제목으로 2019 한국인지과학회 연차학술대회가 개최되었었습니다. 개인적인 관심사로 인해 휴가를 써가며 학회에 직접 참여를 했었습니다. 역시나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은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물론 학문으로서 역사가 오
[정신의학신문 : 이상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새뮤얼 존슨(1709-1784)은 "최소한의 불행을 겪으면서, 가장 큰 행복을 얻는 기술은 작은 것을 관찰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여기서 작은 것을 관찰하는 기술은 무엇일까요? 일상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가령,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 한잔을 벌컥 마시는 것이 아니라 잠시 고소한 커피 향기와 맛을 음미하는 것이나, 퇴근길 전철에서 내다보이는 석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감상에 잠기고, 저녁 산책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저는 태어날 때부터 불행할 운명이었어요.”젊은 친구가 눈물을 왈칵 쏟는다.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함부로 꺼내기도 미안할 정도로, 힘겨웠던 삶의 여정을 앞서 몇 번의 면담을 통해 이야기한 후였다. 듣는 입장에서도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너무나 공감이 가고, 안타까웠다.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면담실을 방문하여 이야기와 울음을 한참 토해내니 감정은 꽤 진정되었지만, 이야기의 내용은 큰 변화가 없었다. ‘삶이 이렇게나 힘들었고, 그래서 저는 불행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에요.’ “진심으로 그
[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과기원 진료실에서 자주 듣게 되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생하고 참아내면 그다음에는 무언가 쉽게 이루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그중 세 가지 질문에 답을 해보겠습니다. “엄마가 지금만 참고 공부하면 다 된다고 했어요. 시험만 잘 보면 편하고 행복하게 산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아요.”엄마한테 속은 겁니다. 만약 엄마도 성적이 좋지 않았으면 똑같이 속은 채로 사셨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성적이 좋았던 엄마도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저렇게 말씀하셨을 수 있
[정신의학신문 : 조현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스트레스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때,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현대인에게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하지만 이 괴로움을 능숙하게 덜어낼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현실은 만만치 않고, 소위 잡생각은 우리 머릿속을 쉽게 떠나지 않지요. 운동이나 취미활동, 종교 등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마음챙김 명상(mindfulness meditation)’ 역시 이런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정신의학신문 : 정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제목이 다소 자극적입니다. 그래도 이 문구에 이끌리셨다는 건, 아이들이 크면 클수록 ‘부모 노릇’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요즘엔 부모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젊은 분들을 참 많이 만나게 됩니다. 공감이 갑니다. 잘하려 하면 할수록 힘이 드는 게 부모 노릇인데 살기 바쁜 청년들이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합니다. 팍팍한 현실이지만, 어딘가에서 아이들은 계속 태어나고, 까다로운 녀석을 한번 잘 키워 보시겠다고 오늘도 부모님들이 가깝지도 않은 진료
[정신의학신문 :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성복 시인의 잠언집 중에는 이런 글귀가 나옵니다.“내 병을 신경성으로 추단한 의사는 정신과에 추천서를 내주었다. 나는 그것을 찢어버렸다. 내 육체가 정신에게 병을 건네주었다면 용서할 수 있으나, 정신이 육체의 정상적인 움직임을 방해했다면 수치스러운 일이다. 나는 정신의 동정을 믿는다.”몸이 아픈 것은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정신이 신체를 병들게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시인은 의사의 의뢰서마저 찢어 버립니다. 그렇게 진단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