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흰색에 가까운 머리칼과 구부정한 등허리 등 익숙한 노인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시기를 쇠퇴기로 생각해왔지만, 인간의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년기 또한 길어졌다. 그에 맞춰 노년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환경조성이 필요한 시점이다.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성인발달과 노화 분야의 선구자인 버니스 뉴가튼(Bernice Neugarten)은 새로운 인생 주기의 개념을 받아들이며 노인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노년기를 전 노년기(55세~75세)와 후기노년기(76세~85세)로 구분하고, 젊
어렸을 때 오락기로 ‘갤러그’와 ‘철권’을 주로 했다던 어머니를 모시고 오락실을 찾은 적이 있다. VR 체험으로 오락의 신 경험을 맛보게 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어머니는 열심히 VR 체험을 했지만 오락이 끝나고 힘들어하셨다. 어머니는 무리해서 시대를 따라가려고 해서 멀미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가 변하는 속도에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 그러니 멀미가 일지.’ 며칠 전 친구가 ‘메타버스(Metaverse)’에 대해 얘기할 때 참 별 이상한 게 등장하는구나, 생각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속이 울렁거리는 듯했다.‘VR(virt
나의 상태는 나도 따라잡기 힘들었다.상담에서 기계적인 답변만을 계속할 때였다. 그때쯤 나는 병원을 ‘약 타러 가는 곳’ 정도로 생각했다. 어떤 위로도, 치료도 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어쩌면 그걸 같이 느끼셨던 걸까. 선생님은 조심스레 평소와 다른 말씀을 하셨다. ‘입원치료’에 대한 권유였다. 화들짝 놀랐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로만 알았다. 속으로 너무 놀랐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다. ‘아-예…….’ 정도로 무마하고 상담실을 빠져나왔다. 여러 가지 생각이 동시에 튀어나왔다.‘왜 나를 다른 병원에 보내려고 하시지?’, ‘
시작은 도봉산이었다.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지하철을 스스로 처음 타기 시작한 것도 초등학교 3-4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시에 나는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집에서 나갈 수 있는, 수단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반 친구들과 산에 가서 꽤나 봉사활동을 했는데, 그곳이 도봉산이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비교적 가까운 곳이었고, 산에 놀러 가면 계곡을 만날 수 있었다. 계곡과 꼬마들의 만남은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우리는 짧은 봉사활동을 마치고, 긴 계곡 놀이를 하곤 했는데, 여벌 옷을 챙기지도 않은 채 온 통 물에 젖
어떤 계절이든 모조리 싫어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는 무렵을 참 좋아했는데 요즘은 그맘때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싫어, 그나마도 두려워하게 됐다. 그래, 싫은 게 아니다 두려운 마음이다. 어떤 계절이든 두렵다. 봄의 화창함이 두렵고, 여름의 상쾌한 풋내가 두렵고, 가을의 뭉클함이 두렵고, 겨울의 긴 밤이 두렵다. 내가 겨우 그 계절에 적응할 때쯤 다음 계절이 도래한다. 그저 그럴 뿐이다. 시간은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꾸준히 흐르고, 나는 때에 맞춰 방패를 앞세워 나아갈 뿐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시간은 ‘
4월 5일, 식목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어릴 적 텔레비전을 통해 볼 수 있던 식목일의 모습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나무를 심는 광경이었다. 식목일은 뉴스에서 꽤나 무게 있게 다루던 주제 중 하나였다. 요즘 들어 식목일은, 그저 달력에 무엇이 쓰여있는 날 중 하나 일뿐이다. 대통령 정도나 돼야 나무를 심는 광경을 보여줄 수가 있다. 요즘은 나무를 심고 싶어도 개인에게 나무를 심을 땅이 없다. 대부분의 산은 산림청이 관리하고 있고, 무엇을 심거나 베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그 이외의 땅은 개인이나 사기업의 소유인데,
런던에서 머물 때, 번잡한 도심에서 여기저기로 걷고, 먹고, 즐기다 어느 날 불안장애가 불현듯 심한 날이 있었다. 당시의 나는 그게 불안장애인 것조차도 몰랐고, 어디든 급하게 숨을 곳이 필요했다. 그때 하이드 파크Hyde park로 숨어들었다. 손이 떨리고 동공이 주체 없이 불안함에 떨렸다. 식은땀이 흐르고, 온도 조절이 어려웠다. 우선 공원 안으로 도망쳐 들어서자, 바깥 도로의 소음이 신기할 정도로 들리지 않았다. 차분히 걸어 가장 가까운 벤치를 찾아 앉을 때까지 수많은 나무들과 풀과 고요함이 존재했다. 그 당시의 고요함은 순식간
제주 사람을 제외한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러하듯 제주도는 한국에서 특수한 지역으로 쳐진다. 육지陸地 land에서 보기에는 꽤 커다란 섬이고, 말투도 꽤나 낯설다. 내륙 여행의 기반이 거의 마련되지 않던 시대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여행=제주’와 같은 생각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제주를 찾은 여행객들에게, 제주 본토 사람들이 보이는 첫인상은 영 거칠다. 여행자의 들뜸과 상대방의 태도의 온도차가 불러오는 차이가 정을 붙이기엔 어렵기만 하다. 반대로 제주에서 보기엔 육지 사람들이 낯설다. 제주는 섬 모든 곳이 관광지이기 때문에, 여기저기
어느 것이든 무엇으로부터 시작하는지는 정말 중요하다.커피 핸드드립을 배울 때, 나는 둥그런 고노kono 스타일의 드립퍼dripper로 배워서 아직도 고노 모양의 드립퍼를 보면 마냥 반갑다. 사진을 배울 때는 펜탁스pentax 필름카메라로 시작해서, 필름카메라를 꽤나 모았고, 여전히 디지털과 병행해서 사용하고 있다. 요새도 필름카메라를 찾는 젊은 수요층이 있는 모양인지,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꽤나 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주제넘게 ‘고생을 하시는군요, 파이팅!’하며 속으로 외치곤 한다. 식물을 시작할 때, 주로 양재 꽃 시장에
권태기의 본래 의미는 결혼한 부부 사이의 권태를 느끼는 시기를 뜻한다. 그러나 요즘은 ‘연애 권태기’, ‘인생 권태기’, ‘직장 권태기’, ‘인간관계 권태기’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온 권태란 어떤 이름일까? 스스로에게 ‘식태기’가 왔다고 표현한다.식태기의 현상으로는 이전 일상보다 식물을 들여다보는 횟수가 현격히 줄어든다. 일단 눈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식물을 들이는 횟수도 줄어든다. 식물이 늘어나면, 내 일만 늘어난다는 식으로 계산이 된다. 장바구니에 담겨있던 엄청나게 원하
사무실이나 가게를 개업하면 대개의 경우 입구가 화려하다. 커다란 식물에 굵직한 공단리본에 보내는 이와 반대편에는 응원의 메시지를 담아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주르륵 줄 세워져 있는 것을 보자면 ‘한국에서 개업 식물이란 무엇일까’ 하는 원초적인 궁금증이 들기 시작한다. 시대별로 개업 식물의 종류는 달라져왔다. 모든 개업식물의 전제 조건은 관리가 쉬워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 산세베리아가 흥행이던 시절이 있다. 무엇보다 관리가 쉽고 딱히 떨어지는 잎이 없어 주변이 지저분 해질 일이 없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자면, 해외에서 산세베리아는
나는 강아지 두 마리와 최근 들어 세어본 적은 없지만 어림잡아 300여 개의 식물이 있는 집에서 이른바 ’집사’ 노릇을 하며 살고 있다. 내가 책임지고 있는 생명체는 크게는 내 책임 아래 있고, 그들의 건강과 안위는 나의 매우 큰 과제이다. 강아지 두 마리는 깊은 인연으로 만나 식구가 되었다. 한 아이는 ‘하루’이다. 스피츠이고 암컷이다. 생김새가 여우같이 생겼는데, 하는 행동도 여우같이 사람을 홀린다. 추측해보기론 이전 집에서 고양이와 살지 않았나 싶은 몇몇 특성을 갖고 있다. 다른 한 아이는 ‘생강’이이다. 요크셔테리어이고 수컷
식물은 보통의 경우 ‘산다’ 하지만 나는 산다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아 ‘들인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다시 말하자면 금전을 지불하고 식물을 받는다. 그것은 구매에 해당한다. 보통 우리는 사는 것들을 생각하면, 식료품이나 디지털기기, 책 혹은 가방이나 옷 그리고 음악이나 영화를 사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구매를 통해 삶의 안정감을 느끼고 기쁨을 만끽하고 또 낭만을 누린다. 물론 나도 식물을 ‘구매’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기쁨과 낭만과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생명을 들이는 일은 물건을 구매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식물이 좋았다. 혼자 식물을 돌볼 때 도 충분히 행복했다. 식물을 하나씩 들일 때마다 가슴이 설렜고, 그 식물이 집에 잘 적응하기를 바라며 매일 들여다봤다. 사람을 피하고자 도망쳐 들어온 세계. 늘 평화롭고 평온했다. 그러나 식물을 통해 사람을 만나면서,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실질적이고 유익한 정보를 배울 수 있었고, 다른 집 식물들을 잔뜩 구경할 수 있었다. 이파리 하나라도 틔우면 방방 뜨는 나 같은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불현듯 반갑고, 동질감이 들었다. 한 식물이 눈에 확 들어왔다. ‘
“잘못 들었습니다?” 이 말에 무언가 기묘한 향수(?)를 느끼는 사람은 30대 이상의 한국 남성일 것이다. 이 말은 군대에서 상대방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때 또는 반문하기 위해 쓰이는 말이다. 그리고 내가 군대에 갔을 때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화법 중 하나였다. 회사나 학교를 비롯한 어느 조직이든 그곳에서만 통용되는 고유한 화법이 있다. 군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일반적인 조직과는 사뭇 다른 화법을 사용해야 하는 곳이다. 대표적으로 모든 말의 어미를 ‘다, 나, 까’로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훈련병이 처음에는 ‘다나까’
2018년 04월 13일, 나는 내 발로 정신병원을 찾았다. 그 당시 나로서는 정말 큰 용기를 낸 셈이다. 예약을 해야 한다는 말에, 아무 날이나 잡아서 아무 시간이나 잡았다. 정작 그 아무 날이 다가오자 두렵고 떨렸다. 괜히 주눅이 들었고, 어디부터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나는 과연 병원에 갈 정도의 사람인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정신병원은 더 큰 문제를 가져야만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약속에 끌려가듯 갔다. 도착하니, 의외로 의사를 바로 만나는 일은 없었다. 엄청난 문진표 및 검사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끔찍이도 물을 싫어했다. 어린이 때 수영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수영장은 한 번 갈 기회가 있었는데, 2차 성징이 빨랐던 나는 내 몸이 마냥 부끄럽기만 했다. 가슴이 나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딱 달라붙는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이라는 곳에서 남들 앞에 나서야 했던 것이다. 당시의 어린이는 수영복이 노출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고, 수영이 남들에게 보여주면서까지 배워야 할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했다.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다음부터 수영장에 근처도 가지 않았다. 그 이후 수영장을 가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로부
나는 참는 것에 능하다. 무엇보다 고통을 참는 것에 능하다. 아기 때는 주사를 맞아도 울지 않는 희한한 아기였다고 했다. 어린이가 되어 아동학대의 현장에서 아주 잘 견뎌냈고, 청소년이 되어서 심지어 맹장수술이 13시간이나 지연되었을 때도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손가락으로 브이(V)를 그리며 ‘다녀올게요.’라고 웃었다고 한다. 또 슬픔을 참는 것에도 능하다. 아주 큰 슬픔과 위기가 다가와도 우선 참는다. 머리가 차가워지고, 빠르게 회전한다. 참고 우선 상황 전반을 파악하자는 결론을 내린다. 그 과정에서 모욕이 느껴지더라도 감정적으로 대하
도대체 몇 그루나 죽인 걸까?허브의 왕 로즈마리, 꽃집의 쉬운 추천만큼 주위에서 많이들 키워서 나도 덩달아 키웠다. 그리고 정말이지 많이 죽였다. 죽이고 다음에 다시 살 때는 꽃집 사장님께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캐묻곤 했다. ‘키우기 쉬워요.’라는 중상모략에 그렇게도 쉽게 넘어갔더랬다. 어떤 곳에서는 야외에 두고 키워야 한다는 큰 팁을 주시기도 하셨다. 사실 그때 인터넷 검색을 했더라면, 아주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그 당시는 식물을 키우는 연령대가 높은 편이었다. 그러니 인터넷 정보가 아주 다양하지는 않았다. 열심히
‘바람’하면 나는 가수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생각이 난다. 가만 듣다 보면 바람의 형태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고, 사람에게, 사랑에 바람은 이런 역할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떠다닌다. 식물에게는 햇살, 물, 토양, 그리고 바람이 꼭 필요하다. 식물이 바람에 떠밀리는 것을 본 적 있는가? 큰 나무가 멋들어지게 흔들리는 것 말고, 가엽게 생긴 식물 한 자루가 강력한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자면 식물이 약자가 된 것 같아 짠하고 구조해 주고 싶은 마음이 쓰인다. 그때 바람은 식물에게 시련인 것이다. 하지만 그냥 바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