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재형씨는 며칠 전부터 마음이 너무 불편합니다. 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 팀장님이 스치듯 했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거든요. “재형씨는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타입이야.” 하는 농담조의 말이었지만, 그간 팀장님이 자신에게 보인 태도를 보면 정말 자신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것만 같았습니다.그 뒤로는 매번 팀장님께 보고서를 올릴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주눅이 들고 또 식은땀이 나곤 했어요. 가끔 하는 잔소리, 혹은 조언들도 가시처럼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잠시 눈만 마주쳐도 가슴이 덜컹
정신의학신문|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독실한 종교인인 직장 동료가 있다. 그는 주말마다 열심히 종교 생활을 하고 봉사도 나간다. 그런 그는 퇴근할 때 종종 비품실에서 봉지 커피 몇 개와 간식을 챙겨간다. 다른 직원들도 가끔 그러는데, 그의 행위가 더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종교인이 생각보다 비윤리적이네.’와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윤리(倫理)’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한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 더 윤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기대에는 근거가 있는 것일까? 종교와 윤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야!”A는 요즘 엄마와 대화할 때면 이 말을 수차례 속으로 삼킵니다. A의 엄마는 최근 직장 동료들과의 큰 다툼 뒤 일을 그만뒀습니다. 처음에는 금방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공백기가 길어지자 점점 불안해했습니다. 이제 A의 엄마는 퇴사를 후회합니다. 유일한 낙은 A에게 자신이 얼마나 우울한지 토로하며 이전 동료들의 뒷담화를 하는 것입니다. 엄마의 기분이 좋아질 수 있도록 노력하던 A는 어느샌가 구직활동도 그만두고 불평불만만 하는 엄마가 부
[편집자 주] 이제 MBTI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는 대화 주제가 됐습니다. 소개팅 자리에서, 혹은 분위기가 어색할 때 우리는 서로의 MBTI를 물어보며 상대를 알아갑니다. 그런데 과연 어떤 지표로 나의 성격 유형을 규정하는 걸까요? ‘E’는 언제나 외향적인 사람인 걸까요? 친숙한 줄 알았던 MBTI의 낯선 모습. 잘 알려지지 않았던 MBTI 네 그룹(E-I / S-N / F-T / J-P)의 측정 기준을 시리즈로 살펴봅니다. 한국 MBTI 연구소에서 발행된 Form Q 매뉴얼을 참조했음을 밝힙니다.한때 유행으로 그칠 줄
정신의학신문ㅣ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코로나로 인해 삶이 멈춰버린 건우 씨의 이야기건우씨는 진료 전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답답하다며 이야기 도중 가슴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를 만날 때마다 느껴지는 무거운 공기에는 그의 절박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났습니다. 건우씨는 해외에서 꽤 유명한 명문대를 졸업했습니다. 대학에서 만났던 친구들이나 교수님에게 항상 인정받는 학생이었던 그는 오랜 타지 생활에서 느낀 외로움 탓에 국내에서 커리어를 이어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2020년 초, 졸업 후 국내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정신의학신문|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0)본능과 이성이 충돌하는 순간 – 돼지와 사자한여름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너무 많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홍수가 났습니다. 숲속에도 홍수가 들이닥쳐 동물들이 다 떠내려가고 나무들은 전부 물에 잠겼습니다.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던 돼지 한 마리도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습니다. 이대로 가다 보면 영락없이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한 돼지는 안간힘을 써서 근처에 있던 통나무에 올라탔습니다.그런데 겨우 정신을 차린 돼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맞은편에 커다란 사자 한
정신의학신문|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사람마다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가지고 있는 관리 비결이 있습니다. 멘탈을 관리하는 방법,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법, 기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법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마음가짐을 달리하는 것부터, 하루를 정리하며 일기를 쓰거나 주기적으로 여행을 떠나서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것이 좋다는 권유도 들립니다. 쇼핑을 통해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정신건강을 위해서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 어떤 것들을 하면
정신의학신문|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떤 사람이 개 두 마리를 길렀습니다. 둘 다 잘 생기고 용감한 개였습니다. 주인은 그중 한 마리를 사냥개로 키웠습니다. 밖에 데리고 나가 사냥하는 법을 가르쳤고, 사냥할 때마다 데리고 다니며 유능한 사냥개가 되도록 조련했습니다. 또 한 마리 개는 집 지키는 개로 키웠습니다. 집 안에 살면서 주는 밥 먹고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게 잘 감시만 하면 됐습니다.시간이 지나면서 사냥개는 더욱 용맹스러워졌으나 집 지키는 개는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일에 익숙해졌습니다. 사냥개는 자신은 매번 산과 들을 힘
정신의학신문|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대다수의 사람들은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릴 때 눈을 먼저 떠올립니다. 이는 대화를 할 때 눈을 맞추거나, 미간, 눈썹, 앞머리에 시선을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그 다음은 입, 코의 순서가 될 수 있겠습니다.그런데 감정을 전달하고 인상을 좌우하는 주요 부위 중 하나가 '눈썹'이라는 걸 아시나요? 눈썹은 인상을 결정짓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눈썹은 분노, 두려움, 행복, 놀람 등 몇 가지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눈썹을 올리는 것은 목소리의 높낮이를 높이는 것과
[정신의학신문: 신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외로움 모멸감 슬픔 두려움 배신감 자괴감 실망 ...지난 하루 간 위에 언급된 감정 중 어떤 감정을 느꼈나요? 우리는 흔히 이런 감정들을 '나쁜 감정' 혹은 '부정적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되도록 멀리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이러한 감정은 느끼면 안 되는 '나쁜' 감정일까요?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어떠한 감정에 좋고 나쁘다는 판단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사실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세상의 어떠한 개념까지 선악판단이나 가치판단을 하는지는 다 다르겠지만, 저는 인간이 느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은 건 아니다 -표현하지 않으면 후회만 남는다 [정신의학신문: 서대문 봄 정신건강의학과 이호선 정신과 전문의]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픔에 겨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어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대개 갑작스러운 사고 또는 질병으로 부모나 배우자나 자녀가 일찍 세상을 떠난 경우다. 이럴 때 쉽사리 가족의 죽음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렵다. 비애와 쓸쓸함, 분노와 허탈감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도저히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힘들다.충격이야 매한가지겠지만, 유
정신의학신문|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고양이의 털을 쓰다듬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사람의 손길을 느끼며 기분 좋은 듯 골골거리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어느 정도 친해진 뒤, 고양이가 먼저 만져달라는 제스처로 자기 얼굴을 비비면 마음이 무장해제 되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고양이는 청각이 예민해 시끄러운 소리를 싫어한다고 합니다. 고양이보호소에서는 예민하고 불안에 떠는 고양이를 위해 잔잔한 클래식을 틀어줍니다. 고양이는 편안하고 조용한 걸 좋아하는 만큼, 다른 존재에게도 그 느낌을 전달할 줄 아는 것일까요
정신의학신문|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몰입의 달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동료교수를 집으로 초대했을 때의 일입니다. 풀리지 않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뉴턴은 잠시 산책을 나갔다가 자신이 잡은 약속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한참 기다리던 동료교수는 어쩔 수 없이 혼자 식사를 끝낸 뒤 돌아갔고, 무아지경에 빠져있던 뉴턴은 고민을 해결하고 나서야 집으로 왔습니다. 식탁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빈 그릇을 본 뉴턴. 그는 “내가 이미 식사를 한 것을 깜빡 잊고 있었군
1. 상처투성이였던 그 시절의 나에게 우리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2)정신의학신문|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신이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 믿었던 청년이 앞으로 자신을 바꾸려면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관계를 내면화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잘못해도 주먹이 날아오는 대신 타이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관계. 혹은 굳이 그런 이상적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보통 사람들이 늘 당연하듯이 겪어왔던 보통의 관계만 유지해도 나쁜 관계로 인해 망가졌던 마음은 조금씩 변하기
[정신의학신문: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우리사회는 숫자로 비교하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궁극적 목표와 이를 위한 수단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악착같이 돈을 벌어 부자가 되었는데 돈 버는 것만 신경 쓰다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다는 후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건강도 망치고 가족도 화목하지 못한데 무엇을 위해 돈을 벌었는지 모르겠다고 속상해 합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겨우 갖게 되었는데 정작 자신과 잘 맞지 않아 후회가 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학생 때
[정신의학신문: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장승용 정신과 전문의] 진료실에서 환자분들을 만나다 보면 느끼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자주 느끼는 것은 본인의 걱정/고민이 해결되거나 꿈이 이루어진다면 정신적인 어려움들이 저절로 해소될 것이라고 다소 오해를 하는 경우가 꽤나 있다는 것이다. 2021년 개봉한 디즈니 픽사의 ‘소울’은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재즈를 가르치고 있는 조 가드너 의 이야기다. 조는 유명 재즈클럽에서 멋드러지게 연주하는 피아노 연주자가 되는게 꿈이지만, 번듯한 아들의 직업을 원하는 어머니
‘노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흰색에 가까운 머리칼과 구부정한 등허리 등 익숙한 노인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시기를 쇠퇴기로 생각해왔지만, 인간의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년기 또한 길어졌다. 그에 맞춰 노년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환경조성이 필요한 시점이다.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성인발달과 노화 분야의 선구자인 버니스 뉴가튼(Bernice Neugarten)은 새로운 인생 주기의 개념을 받아들이며 노인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노년기를 전 노년기(55세~75세)와 후기노년기(76세~85세)로 구분하고, 젊
나의 상태는 나도 따라잡기 힘들었다.상담에서 기계적인 답변만을 계속할 때였다. 그때쯤 나는 병원을 ‘약 타러 가는 곳’ 정도로 생각했다. 어떤 위로도, 치료도 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어쩌면 그걸 같이 느끼셨던 걸까. 선생님은 조심스레 평소와 다른 말씀을 하셨다. ‘입원치료’에 대한 권유였다. 화들짝 놀랐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로만 알았다. 속으로 너무 놀랐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다. ‘아-예…….’ 정도로 무마하고 상담실을 빠져나왔다. 여러 가지 생각이 동시에 튀어나왔다.‘왜 나를 다른 병원에 보내려고 하시지?’, ‘
시작은 도봉산이었다.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지하철을 스스로 처음 타기 시작한 것도 초등학교 3-4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시에 나는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집에서 나갈 수 있는, 수단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반 친구들과 산에 가서 꽤나 봉사활동을 했는데, 그곳이 도봉산이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비교적 가까운 곳이었고, 산에 놀러 가면 계곡을 만날 수 있었다. 계곡과 꼬마들의 만남은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우리는 짧은 봉사활동을 마치고, 긴 계곡 놀이를 하곤 했는데, 여벌 옷을 챙기지도 않은 채 온 통 물에 젖
어떤 계절이든 모조리 싫어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는 무렵을 참 좋아했는데 요즘은 그맘때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싫어, 그나마도 두려워하게 됐다. 그래, 싫은 게 아니다 두려운 마음이다. 어떤 계절이든 두렵다. 봄의 화창함이 두렵고, 여름의 상쾌한 풋내가 두렵고, 가을의 뭉클함이 두렵고, 겨울의 긴 밤이 두렵다. 내가 겨우 그 계절에 적응할 때쯤 다음 계절이 도래한다. 그저 그럴 뿐이다. 시간은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꾸준히 흐르고, 나는 때에 맞춰 방패를 앞세워 나아갈 뿐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시간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