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People don’t quit a job, they quit a boss. 사람들은 직장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상사를 떠나는 것이란 말이 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고개가 끄덕끄덕하는 모습이 벌써 눈에 보이는 듯하다. 입사와 퇴사 그 무엇도 쉬운 게 하나 없다. 입사야 자기소개서며 면접이며 준비가 복잡하겠지만, 퇴사는 그저 몸만 나오는 것뿐인데 뭐가 힘드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퇴사는 입사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괴롭다.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이미 큰 에너지가 소모되며,
정신의학신문 | 정신건강의학과 정두영 전문의 우리는 당연한 권리를 빼앗겼다고 느끼면 화가 납니다. 오이를 잘 받아 먹던 실험실의 원숭이는 옆 우리의 원숭이에게 포도를 주는 것을 보자 화가 나서 소리를 지릅니다. 원숭이에게 다가가 다시 오이를 주면 아까는 맛있게 먹었던 오이를 집어 던지며 철창을 흔듭니다. 나도 똑같이 포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는 것이죠. 옆 원숭이가 힘든 실험을 마치고 보상을 받은 것인지, 건강 상태 때문에 다른 먹이를 먹고 있는 것인지 원숭이 수준에서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인간 사회에서도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혜영 씨는 깊은 밤, 졸린 눈을 비비며 잠자리에 누웠지만 웬일인지 의식은 점점 또렷해지면서 머릿속에는 온갖 상념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며칠 전 회식 자리에서 술김에 평소에 하지 못했던 불평불만을 상사에게 쏟아붓던 장면이 빠르게 스쳐 갑니다. 다시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자신의 입을 꿰매 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어젯밤, 선호 씨는 아내와 한바탕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요즘 들어 선호 씨는 아내와 부딪치는 일이 부쩍 잦아졌습니다. 회사 일도 바쁘고 피곤한데, 집에 들어서면 냉기만 감돌 뿐
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언젠가 만원 지하철에서 한 노인과 젊은 여성이 실랑이 벌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노인이 여성에게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여성은 자신이 임산부이기 때문에 서서 가기에 힘들 것 같다고 답했다. 노인은 여성이 괘씸했는지, 배도 안 나왔는데 비켜 주기 싫어서 거짓말하는 것 아니냐며 한마디했다. 실제로 여성의 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임산부의 배처럼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의 가방에는 임산부임을 증명하는 임산부 배지가 달려 있었다. 초기 임산부였던 것이다. 결국 상황을 지켜보
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코로나19가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지만 이전의 일상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습니다. 비대면 수업과 재택근무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 변화가 달갑지 않기도 합니다. 초중고 학생들은 학업과 친구 관계에 대한 부담을 호소합니다. 직장인들은 출퇴근으로 사라지는 시간적 여유와 불편한 회식 같은 대인관계 부담을 이야기합니다. 비대면 수업이나 재택근무를 새로 익혀야할 때도 부담이 되었는데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도 편하지는 않습니다. 변화는 스트레스와 관련됩니다. 심각한 질
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의학과 전문의 은혜 씨는 요즘 직장에서 ‘은따(은근한 따돌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잡다한 업무를 은혜 씨에게 몰아 주고, 잠시 자리를 비우면 팀원들끼리 점심을 먹으러 가기 일쑤입니다. 팀의 리더 격인 제일 선배가 은혜 씨 커피만 사 오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얼굴이 붉어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니 돌아온 선배의 말은 “은혜 씨 있는 줄 몰랐네?”였지요. 더욱 속상한 점은 이 모든 게 퇴사를 통보한 뒤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이직 계획을 밝힌 날, 선배의 “배신자”라는 날카로운 말은 여전히 은혜 씨의
* 알립니다 : 21일 서울숲 방문은 개인적으로 방문한 제주도에서 귀국시 19일 발병한 공황발작으로 참석하지 못하여, 제주도에서의 사려니 숲 이야기로 대신합니다. 2022년 5월 18일. 제주, ‘사려니 숲’ 완주 이제껏 사려니 숲을 수 없이 다녔지만, ‘완주’의 개념으로 바라보지 않은 탓인지 한 쪽 출입구로 들어갔다가 적당히 숲을 즐기고, 다시 돌아 나오는 방식으로만 다녔다. 사려니 숲이 생각보다 길고, 그 길을 정복(?) 하려면 꽤 걸어야 하기에 엄두도 못 냈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방문에 어쩌다, 정말 어쩌다 숲의 한 방향(1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자와 당나귀와 여우가 우연한 기회에 친구가 되었습니다.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었지만, 의외로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의기투합한 이들은 팀을 이뤄 사냥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여우가 꾀를 내어 유인하고 당나귀가 사냥감을 몰아가면 사자가 덮쳐서 해결하는 방식이었죠. 매우 적절한 역할 분담이어서인지 사냥이 수월했고 많은 먹잇감을 얻었습니다. “수고 많았다. 당나귀야, 네가 잡은 짐승들을 세 몫으로 나눠 봐라.” 사자는 당나귀에게 사냥에 성공한 먹잇감들을 나눠 가질 수 있게 분배하라고 지
정신의학신문 | 심금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요즘처럼 박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적이 없는 것 같다. 박탈감(剝奪感)은 사전적 정의로 재물이나 권리, 자격 따위가 빼앗겼다는 느낌이나 기분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소하는 박탈감은 실제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뭔가를 빼앗긴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나타나는 박탈감, 즉 상대적 박탈감으로 자신은 실제로 잃은 것은 없지만 다른 대상이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거나 가지게 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잃은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최
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의학과 전문의 M/56, 알코올성 간 경변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지내면서 격하게 화를 내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너무나도 다양한 삶의 유형과 심리적인 어려움들을 매일같이 접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감정이 올라오는 상황에서는 한 발자국 떨어져서 감정의 흐름을 관찰하고 치료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배움 덕분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진료 후에 한참 동안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던 일이 수련 기간 중에 한 번 있었다. 다른 과 병동에 입원하고 있던 환자의 자문 진료였다.대학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들, 특히 신체적 상태가 좋지
2022년 5월 14일. 느리게 걸으며 명상하기. 걷기. 언제 마지막으로 ‘걸어’봤는가?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최적의 (거리 혹은 환경) 동선으로 걸은 것을 제외하고, 내 몸을 위해, 내 정신을 위해 오롯이 ‘걷기’를 한 것 말이다. 나는 2년은 된 것 같다. 2년 전에 삼청공원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이런 걷기를 언제 했지?’하는 똑같은 질문을 되뇌며 걸었더랬다. 그때 꽤나 시끄러운 새소리와, 작은 물소리, 점점 가빠 오는 숨소리, 터벅이는 발소리. 그렇게 소리와 약간은 부담되는 발목과 온갖 생각이 왔다가 나갔다 하는 머릿속을 조합하
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전 6시. 알람이 울리면 A는 단숨에 일어나 운동복으로 갈아입습니다. 태블릿과 요가 매트를 준비하고, 유튜브에서 인기 있는 홈트레이닝 영상을 재생합니다. 30분 정도 운동한 뒤에 건강한 식단으로 아침 식사까지 마치면 출근 준비를 시작할 시간이 됩니다. 가끔 운동 대신 독서나 명상을 할 때도 있습니다.이는 자기계발 트렌드인 ‘미라클 모닝(Miracle Morning)’의 한 예입니다.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오전 4~6시 사이에 일어나 자신만의 성장의 시간을 갖습니다. 이들은 자
2022년 5월 14일. 첫 ‘서울숲’. 일전에 페스티벌 때문에 서울숲에 온 기억이 있다. 서울숲이 꽤 큰 모양인지 그 시끄러운 북새통에도 근처 주민들은 그러려니,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거나 숲을 찾아 데이트를 하는 연인이 보였다. 이번에 찾은 서울숲은 정말 ‘산책’을 하기 위해 찾은 곳이라 처음이라는 감정이 들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서울숲을 찾은 기분. 그래, 서울 한복판에 포부도 당당하게 ‘서울’울 붙인 숲이 어떤지 구경이나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처음 걷게 된 곳은 잣나무 아래 오솔길이었다. 잣나무가 떨어뜨린 잎과 솔방울이 잔
정신의학신문 |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나 기분이 좀 우울한데 정상인 걸까?’‘야, 그 정도면 정상이야, 다들 그래.’우울과 불안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하다고 해서, 불안하다고 해서 무조건 치료가 필요하고 비정상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로 우울해야 하는 걸까요? 어디부터 딱 잘라서 마음을 정상이나 비정상으로 가를 수 있는 것일까요?마음에 문제가 있다는 것,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것, 비정상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 비정상이라는 것을
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제는 SNS가 더이상 즐겁지 않은 인플루언서, 윤하 씨의 이야기 윤하 씨의 스마트폰은 쉴 새 없이 알람을 울리곤 했습니다. 그녀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 짧은 글과 셀피(selfie) 올리기를 즐깁니다. 윤하 씨는 SNS에서는 꽤 유명한 인플루언서로, 그녀가 올린 피드는 순식간에 수천 명의 사람이 읽고, 또 ‘좋아요’를 누릅니다. 하루 내내 사진을 찍고, 올리고, 사람들의 호응에 반응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근 몇 달 동안 손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느 마을에 양치기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언덕으로 양 떼를 몰고 가 종일 풀을 먹는 양들을 지켜보다 해가 질 무렵 다시 양 떼를 몰고 내려와 우리 안에 안전하게 가두었습니다. 매일 이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하루는 무척 심심해졌습니다. 그래서 장난을 치기로 했죠. 열심히 일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말입니다. “늑대다!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양들을 쫓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소년은 거짓말로 소리쳤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소년의 다급한 외침을 들었습니다
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공격을 잘하는 팀은 경기에서 승리하지만, 수비를 잘하는 팀은 우승을 차지한다.”라는 스포츠계의 격언이 있습니다. 장기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화려한 공격력 못지않게, 오히려 그보다 더, 안정적인 수비 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이겠지요. 얼마 전에 있었던 강의에서 지능 지수와 사회적 기능이 비례하는지, 또는 행복한 삶과 연관관계가 있는지 질문을 받고서 답변을 생각하던 중에 이 격언이 떠올랐습니다.생각해 보면 병원에 내원하여 종합심리검사 결과를 듣는 수검자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항목은 IQ 입
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내가 아기를 낳고 이제 반년이 훌쩍 지나가게 되었다. 약 반년 이상을 키우면서 수 없이 많은 국민 육아템들의 도움을 받고, 감탄을 금치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튤립 버튼을 누르면 튤립 머리(?)가 반짝거리면서 4~5곡 정도의 동요가 나오는 사운드 북은 아기뿐만 아니라 어른까지도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 있는 장난감이다. 아기랑 놀아 주러 오신 어머니가 밤에 주무시기 전 동요를 흥얼거렸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꽃잎 색깔에 따라 다른 노래들이 담겨 있는데, 아기랑 놀아 주던
[편집자 주] 지난 편에서 MBTI(Myers-Briggs-Type Indicator,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는 양극단에 위치한 지표 가운데 개인의 성향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 보여주는 성격검사라는 점을 살펴봤습니다. 예를 들어 ‘외향형(E)’과 ‘내향형(I)’은 나를 움직이는 에너지의 방향을 기준으로 밖으로 발산되는지, 나로 향하는지에 따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번 편의 주제인 ‘감각형(S)’과 ‘직관형(N)’은 사람이나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개인의 성향을 보여줍니다. 어떤 것을 ‘인식한다’는 것은 자극을 받아들이고,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부들이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배에는 수십 년 동안 고기를 잡으며 살아온 노련한 어부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고기가 있을 만한 곳에 그물을 던졌지만, 번번이 허탕이었습니다. 여러 곳을 돌며 수없이 그물을 던졌으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참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바닷속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이들은 힘이 빠지고 허탈해졌습니다. “알 수 없는 일이야. 이런 적이 없었는데…….”“오늘은 정말 운이 없는 날이야. 이런 날은 뭘 해도 안 되는 법이지.” 낙담한 어부들은 뱃마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