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터뷰한 일이 있습니다. 꼼꼼하게 작성된 질문에 답하는 동안 제 마음속에 있는, 그렇지만 미처 알아차리고 있지 못하던 것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바라보는 행복, 그리고 삶은 어떤 것인지 묻는 질문에 답을 하고는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곱씹었습니다.아직 평균 수명의 절반도 채 살지 않았기 때문에 행복에 대해, 삶에 대해 논하기에는 너무 이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 덕분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며
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병원 안에 운동 기구를 들이고, 낮은 자존감으로 힘들어하여 정신과에 내원하는 환자분들께 운동을 처방하는 날을 꿈꾸곤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새로운 경험입니다. 운동은 가장 빠르게, 효율적으로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경험이 되어 줄 것입니다.사람의 성격은 물려받은 기질 위에 수많은 경험이 쌓이면서 만들어집니다. 유전적 요인과 환경이 상호작용한다는 생물학 교과서의 내용을 정신과적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나 자신에 대한 태도가 모두 이러한 '성격
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런 문제는 상담을 받아야 할까요, 약물치료를 받아야 할까요?”인터넷 게시판에 종종 올라오는 정신의학적 난제입니다. 답변이 어려운 이유는 가장 먼저 짧은 글만을 바탕으로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있습니다. 정신과적 치료 가운데 상담과 약물치료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담을 받으면 이렇다더라, 어디어디에서 약물치료를 받았는데 괜찮았다, 정도의 댓글들이 질문자의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일들이
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음이 상했다고 해서 무조건 공감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감이라는 단어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커다란 오해가 있다고 느낍니다. 공감은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이해하는 과정을 말하지요.그런데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공감을 무조건적인 지지와 동의어로 여기곤 합니다. 내가 힘들 때 다른 사람들은 귀를 기울여 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고요. 이런 사람들에게, 공감이란 나의 감정 상태에 대한 이해보다는 내가 옳다는 것을 확인받는
"전역하면 다 나을 텐데, 그거 꾀병 아니야?" 여러분은 아마도 이런 뉘앙스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을 것입니다. 아프게, 억울하게 느껴지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입대해서 낯선 사람들과 24시간 내내 부대끼며 지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직적인 계급 구조와 딱딱한 명령 체계는 사회에서의 자유로운 생활과 전혀 다릅니다. 여러분은 군 복무에 적응이라는 것을 해 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있는 곳은 실수하면 언제든 지적과 뒷담화가 돌아오는 아주 작은 세계입니다. 위축되어서 일을
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스스로의 마음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음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정신과적 주제와 관련된 TV 프로그램, 유튜브 채널 등이 많아진 영향이 적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성격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들을 종종 마주합니다. 이러한 관심이 20, 30대 성인의 새로운 문화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관심이 가는 점은, 상당수의 젊은 성인들이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의 원인을 성장 환경에서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심하
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후 진료 시작 후 첫 번째로 진료실에 들어온 사람은 60대 중반의 여자 환자였다. 남편과 아들로 보이는 가족들이 함께 들어와서 내 맞은편에 앉았다. 환자는 걸음걸이가 다소 부자연스러웠고 몸이 앞으로 살짝 굽어 있었다. 파킨슨병 환자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퇴행성 뇌 질환인 파킨슨병에는 정신과적인 문제가 종종 동반된다. 뇌의 여러 영역들이 기능을 잃어 가면서 생기는 일이다. 환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이다. 병이 있어서 일상생활이 자유
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입원 병실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환자복을 입고 함께 생활합니다. 정신과적 진단, 사는 곳, 직업, 성격, 연령, 무엇 하나 같은 것이 없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병동, 특히 외부와의 접촉이 제한된 보호 병동의 경우에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오가는 가운데 작은 사회가 만들어지곤 합니다. 병동 공동체의 특성은 당연히 그 구성원들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기분이 몹시 들뜨고 에너지로 가득한 조증 상태의 환자가 두 명만 있으면 병동 전체에 활기가 넘쳐 흐릅니다. 환자들의 연령대가 낮으
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얼마 전 있었던 모임에서 선배 N형의 결혼생활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모임 구성원의 대다수가 미혼인 데다 결혼을 생각 중이기도 했기 때문에 질문이 적지 않았다. 특히 다들 궁금해했던 것은 N형이 왜 결혼을 결심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 지금의 아내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는지, 아내의 어떤 점이 형을 그렇게 만들었는지에 관심이 쏠렸다.N형의 답변은 매우 체계적이고 구체적이었다. 여러 이유 가운데 N형이 특히 강조한 것은 첫 번째로 아내에게 함
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의학과 전문의 M/56, 알코올성 간 경변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지내면서 격하게 화를 내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너무나도 다양한 삶의 유형과 심리적인 어려움들을 매일같이 접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감정이 올라오는 상황에서는 한 발자국 떨어져서 감정의 흐름을 관찰하고 치료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배움 덕분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진료 후에 한참 동안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던 일이 수련 기간 중에 한 번 있었다. 다른 과 병동에 입원하고 있던 환자의 자문 진료였다.대학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들, 특히 신체적 상태가 좋지
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TV에서 아침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에는 건강 비법들이 종종 소개된다. 연예인들의 자기 관리 방법, 동안 비결, 당뇨와 고혈압을 낫게 하는 식사들. 적당한 운동과 건강한 식사처럼 도움이 되는 내용도 있지만, ‘적당히 좋아 보이는’ 검증되지 않은 내용도 못지않게 많다. 그중 채소 달인 물, 버섯 달인 물은 단골 소재다.그런데 이처럼 검증되지 않은 건강 관리 비결은 효과가 없을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내과, 특히 만성 콩팥 질환을 보는 신장내과 동기들이 모임에서 푸념을 하곤 했었다. 콩팥 질
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공격을 잘하는 팀은 경기에서 승리하지만, 수비를 잘하는 팀은 우승을 차지한다.”라는 스포츠계의 격언이 있습니다. 장기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화려한 공격력 못지않게, 오히려 그보다 더, 안정적인 수비 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이겠지요. 얼마 전에 있었던 강의에서 지능 지수와 사회적 기능이 비례하는지, 또는 행복한 삶과 연관관계가 있는지 질문을 받고서 답변을 생각하던 중에 이 격언이 떠올랐습니다.생각해 보면 병원에 내원하여 종합심리검사 결과를 듣는 수검자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항목은 IQ 입
정신의학신문|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사람마다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가지고 있는 관리 비결이 있습니다. 멘탈을 관리하는 방법,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법, 기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법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마음가짐을 달리하는 것부터, 하루를 정리하며 일기를 쓰거나 주기적으로 여행을 떠나서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것이 좋다는 권유도 들립니다. 쇼핑을 통해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정신건강을 위해서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 어떤 것들을 하면
[정신의학신문: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공의 수련 시절 매주 월요일 아침, 병동 입원 환자들의 치료 경과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회의를 주관하시던 A 교수님께서는 입버릇처럼 환자들의 연애 유무와 지속 기간에 대해 질문하셨습니다. 첫 회의에서 저는 우물쭈물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주치의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사항을 모른다고 꾸지람을 들었지만 그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갸우뚱했습니다. 이후로 수련을 쌓으며 깨달은 내용을 적어 보려고 합니다. 글의 결론은 제목과 같습니다. 가장 훌륭한 정신과적, 심
[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치매와 관련하여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알츠하이머 병이 치매와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입니다. TV 프로그램에서 치매에 대해 설명을 할 때면 치매와 알츠하이머 병을 섞어서 이야기하곤 합니다. 혈관성 치매, 루이소체 치매 등의 이름들을 함께 접하면 더더욱 헷갈립니다. 오늘은 치매의 기본적 이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먼저 증례를 살펴보겠습니다. 1. A 씨는 75세의 남성입니다. 1년 전부터 서서히 시작된 기억력의 저하를 주소로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하였습니다. 함께
[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누군가의 정신과적 어려움을 판단할 때, 우리는 드러나는 모습과 행동, 말을 근거로 삼습니다. 꼭 정신건강의학과 진단 기준인 DSM-5를 따르지 않더라도, 매일같이 우울해하고 입맛이 없으며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친구가 있다면 우울증을 한 번쯤 떠올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역시 환자의 자세한 병력, 면담, 생물학적 검사, 심리 검사 등을 종합하여 진단을 내리는 가운데 환자가 나타내는 모습이 진단적 인상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그런데,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비슷하면
[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울증이 있을 때 우울한 기분을 일기로 남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요즘은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 '우울 계정'을 따로 만들어서 순간순간의 기분들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환자분들의 일기장이나 인스타그램 계정은 아픔과 상처로 가득합니다. 빨간색 글씨로 휘갈겨 쓴, '죽고 싶다'는 글귀를 볼 때면 저 역시도 마음이 시립니다. 감정이 그대로 실려 있는 낙서는 보는 사람을 압도합니다. 자신의 기분에 대한 기록은 우울한 사람들-우울증 환자들-에게 다양한 의미를 가집니다. 누군가 기록을 보고 이해해 주
[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성격의 문제와 관련해, 앞서 글을 통해 말씀드린 적이 있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더불어 경계성 성격장애(인격장애)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접합니다. 많은 경우는 경계성 인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겉으로 보이는 모습 - 잦은 기분 변화, 대인 관계에서의 변동성, 자해 또는 자살 시도 등 - 에만 주목하여 '연인으로 지내면 힘든 사람' 정도로 묘사하는 데 그칩니다. 글을 통해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관해 조금 더 이해하는 시간을 만들어보려 합니다.27세 여성 E 씨는 인간관계
[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건강의학과와 어쩌면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도 생각하실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바로 조루증입니다. 국내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조사에 따르면 대략 성인 남성 4명 가운데 1명이 조루증과 이로 인한 성관계에서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4분의 1이면 단순하게 생각해 대한민국에서 서울시 인구가 차지하는 정도보다 큽니다.그러나, 원만한 성관계가 파트너와의 친밀감을 확인하고 행복한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성과 관련된 문제는 민망함 때문에 공개적으로 입에